팬픽/유루유리

[히마사쿠]피그말리온 효과-07

향유동화 2015. 12. 28. 19:29

*본 팬픽은 기존 캐릭터 설정과 다를 수 있습니다*

 

 

 

 

과학 수업 시간. 니시가키가 들어왔다. 얼굴이 어두워보인다. 책을 들고 교탁에 다다른 니시가키는 어두운 얼굴을 들어 교실 전체를 둘러보았다.

 

"며칠 전... 물건을 훔친 사람은 자수 하도록."

 

교실이 술렁인다. 하지만 그 뿐, 물건을 훔친 사람은 어딘가에 움츠려서 입을 꾹 다물고 있는건지 나오지 않는다.

 

"지금 자수하면 용서해주겠다. 하지만 경찰에 신고해서 나왔을 경우 엄중한 처벌에 처하게 되겠지."

 

술렁이던 교실이 왁자지껄해진다. 니시가키는 시끄럽다고 교탁을 두드리는 대신에 한명 한명 표정을 살폈다. 고도의 심리전이다. 눈동자가 조금이라도 흔들렸다간 바로 감옥행이다.

 

"내 재량으로 끝낼 수 있을때 손을 드는 것이 좋을거다!"

 

니시가키가 마지막이라는 듯 크게 소리쳤다. 교실이 한순간에 조용해지고, 곧이어 누군가가 벌떡 일어나서 손을 들었다. 학생들이 전부 뒤쪽을 쳐다보았고, 니시가키는 눈을 가늘게 떴다.

 

"...너냐?"

 

아카리와 치나츠가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문득 정신을 차렸다. 의자는 뒤로 밀려나있고, 학생들은 전부 이쪽을 주시한다. 다른 학생들 보다 시선이 위쪽에 있는 듯, 교실 전체가 내려다보인다.

 

"오오무로 사쿠라코! 너냐!"

 

사쿠라코가 손을 내렸다. 내가 왜 일어나있는거지?

 

"아, 아, 아뇨! 저는 도둑이 아닙니다!"

"거짓말 하지 마라! 손을 들고 일어난건 너 자신이야!"

"저는 훔치지 않았어요! 히마와리는...."

 

아차 싶어서 입을 막았지만 이미 니시가키는 승리에 찬 발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누군가가 발을 묶어두는건지 몸이 꼼짝을 않는다.

니시가키가 바로 코앞까지 다가와서 멈췄다.

 

"네 마음속에 있는 양심이 손을 든거다. 훔쳤다는걸 인정해."

 

오금이 저릴 정도로 무시무시한 표정이었다. 마냥 천진한 사람에게서 그동안 찾아볼 수 없던 표정. 이런 표정은 히마와리의 캡슐에 몰래 다가갔을때 지었어야 했다.

 

"인정해, 사쿠라코."

 

치나츠가 일어났다.

 

"너무해... 그런 일이 있었다니..."

 

아카리가 일어났다.

 

"얘, 얘들아, 너희까지..."

 

이건 전부 니시가키가 나를 놀렸기 때문이야, 나는 복수하려고, 그냥 잠깐만 놀래주려고...!

 

"사쿠라코는 도둑이야!"

"니시가키 선생님께 사과해!"

"경찰에 신고하자!"

 

여기저기서 학생들이 목소리를 높이며 한명씩 일어나는 것이었다. 사쿠라코는 점점 작아졌다. 이러려고 한게 아닌데, 잠깐만 빌렸다가 제자리에 돌려놓을 작정이었는데!

 

"...저는 빌린 물건이었군요."

 

순간 어지러웠던 교실이 사라지고 히마와리가 등장했다.

 

"히, 히마와리, 그게 아니라..."

"저는... 물건...이었네요."

 

저는 니시가키 히마와리군요. 어디선가 환청이 들렸다. 히마와리가 조용히 눈물 한방울을 떨구었다.

 

"아니야, 히마와리!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

 

어디선가 또 와글대는 목소리가 들린다. 사쿠라코는 웅크려 앉아 귀를 꽉 막았다.

 

"난 도둑이 아니라고----!"

 

 

 

 

 

 

 

 

 

 

 

숨이 차오른다. 눈 주위가 촉촉해서 훔쳐보니 눈물이다. 옆으로 고개를 돌리자 히마와리가 직각으로 앉아있다. 아니, 내가 누워있는건가... 사쿠라코가 몸을 일으켰다.

 

"피곤해서 한숨 주무신다고 하시더니... 악몽을 꾸셨나요?"

 

히마와리가 물을 한잔 내밀었다. 소매로 눈가를 몇번 문지르고 물을 받았다.

 

"나... 운거 아니야."

 

훌쩍이면서 물컵을 기울이자 히마와리가 자상하게 웃었다.

 

"네, 알고 있어요."

 

뭘 안다는거야. 속으로 투덜대며 물 한잔을 다 마시고 나니 그제서야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도대체 그 기분 나쁜 꿈은 뭐야...

 

'네 마음 속에 있는 양심이 손을 든거다.'

 

조용히 가슴에 손을 얹었다. 알다가도 모르겠다. 마치 무언가를 깨달으라는 듯한 나긋하고도 근엄한 말이었다.

 

"저녁 다 됐어요. 내려와서 드세요."

 

히마와리가 일어나려고 한다. 사쿠라코가 어금니를 꽉 깨물면서 히마와리의 손을 잡아 내렸다. 다시 히마와리의 몸이 낮아졌다.

 

"...사쿠라코?"

"너는 물건이 아니야."

"네?"

"너는... 사람이야. 알겠어? 너는 사람이라고!"

 

눈이 뻐근해진다. 히마와리가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들어서 사쿠라코의 눈가를 훔쳤다. 그리고 다시 웃는다.

 

"명심할게요."

 

히마와리 손 끝에 묻은 작은 마음 한방울이 반짝였다. 그 미소에 안심이 된 작은 마음도 웃는다.

 

 

 

 

 

 

 

***

 

꼭 웃고 있는 것만 같다. 목도리 안으로 목을 움츠리면서 사쿠라코는 간만에 가슴이 꿈틀대는 진귀한 경험을 했다. 철창 안에 갇혀있는 새들은 저마다 목소리를 높이면서 자기네들끼리 떠들고 있었다. 부리 끝이 올라가 있어서 미소를 짓고 있는 것 같다. 수박씨같은 까만 눈동자 안에 얼핏 자신의 모습이 비춰지자 사쿠라코가 피식 웃었다.

 

'다크써클이 심해. 괜찮아?'

 

문득 치나츠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시야가 흐려지면서 유리창 안의 새들은 눈 밖으로 밀려나고 어느새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 사쿠라코였다. 얼굴이 많이 수척해진것 같기도 하다. 매일 보는 얼굴이라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심한가..."

 

괜히 눈 밑을 쓱쓱 문질러보았다. 지우개로 깔끔히 지워질 수 있는 것이면 좋으련만. '나 피곤해요'라고 드러내서 뭐 어쩌자는건지.

 

"아, 저기..."

 

사쿠라코가 흠칫 놀라면서 유리창에서 떨어졌다. 어느새 앞치마를 입고 있는 여자가 다가와있었다.

 

"새, 구경해보실래요? 안에 많아요. 한마리 키워보시면 좋을거예요."

 

혹시 피곤해보여서 심신 좀 달래라고 권하는건가?

 

"아, 아닙니다. 그냥 지나가다가 구경한거예요."

 

적당히 얼버무리고 뒤돌아서려는데 웬 커다란 새 한마리가 등장했다. 그 큰 그림자 안에 사쿠라코의 얼굴이 통째로 가려졌다.

 

"미늉! 이리와!"

 

매장 안에서 금발머리 여자가 황급히 뛰어 나왔다. 이미 새가 사쿠라코의 얼굴을 점령해버린 뒤였지만. 사쿠라코는 별다른 미동 없이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은 새를 흘끔거리다가 하하, 짧게 웃었다.

 

"죄송합니다, 얘가 아직 어려서..."

 

여자가 황급히 사과하면서 새를 떼어갔다. 사쿠라코의 폭신한 파마 머릿결이 좋았는지 새는 한동안 발을 버둥거리다가 결국 여자의 어깨에 안착했다. 머리가 부스스해졌다. 안그래도 관리 잘 못해서 개털이었으니 별 상관은 없다.

여자는 츄리닝 차림이었다. 이 엄동설한에 춥지도 않은지 건드리기만 해도 깨질 것 같은 빨간 볼을 드러내며 헤헤 웃었다.

 

"매장 주인 되시나요?"

"네, 제가 여기 책임자예요. 새 조련사이기도 하구요. 아, 얘 이름은 미늉인데 지금 훈련 중이예요. 미늉, 인사해야지? 안녕하세요?"

 

얼른 가고 싶은데 자꾸 이상한게 말려든다. 사쿠라코가 새를 빤히 쳐다보자 새가 발 한쪽을 들더니 큰 부리를 꿈쩍댄다.

 

"안녕하세요?"

"아이, 잘했어요~"

 

인사를 받아 쳐줘야 하나, 손가락을 움찔거리던 사쿠라코는 여자의 초롱초롱한 눈에 시선이 막혀 손을 뒤로 숨겼다.

 

"이것도 인연인데 안에서 차 한잔 하고 가세요."

"제가 해야할 일이 있어서... 죄송합니다."

"미늉이 얼어 죽어요! 얼른 들어와요~"

 

여자가 사쿠라코의 손을 잡아 끄는 통에 하는 수 없이 매장 안으로 들어왔다. 일이 복잡해졌다.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넣고 주변을 둘러보니 새 뿐만 아니라 각종 애완 물품들도 파는 모양이었다. 규모가 꽤 넓고 깔끔했다. 다만 흠이라면 새들을 너무 많이 들여놓은 탓에 닭장 냄새가 풀풀 나는 정도랄까.

손짓하는 소파에 앉으니 처음에 옆에서 말을 걸었던 여자가 차를 타와서 사쿠라코에게 내밀었다. 두 손을 받고 조금 홀짝이니 새를 집어넣고 돌아온 매장 주인이 사쿠라코의 맞은편에 앉았다.

 

"실례지만, 혹시 오오무로 사쿠라코 박사님 되시나요?"

"....컥!"

 

차를 왈칵 쏟아버렸다. 사레 들릴 뻔 한 목을 움켜쥐고 멍하게 여자를 건너다보았다. 이미 확신에 찬 눈빛이었다.

 

"어... 어떻게..."

"이쪽 계열에서는 유명하시죠. 연구 기획안이 몇번 당선되셨었잖아요. 니시가키 나나 박사님도 물론 알구요."

"아... 그렇군요."

 

다시 차를 마시려던 사쿠라코가 멈칫했다.

 

"이쪽 계열이라면...?"

 

여자가 씨익 웃었다. 하얀 이가 만개하며 장난꾸러기 여자아이가 전구가 반짝이듯 잠시 비춰졌다가 사라졌다.

 

"저도 박사거든요. 이래보여도!"

 

여자가 뒷춤에서 빨간 리본을 하나 꺼내더니 머리 위에 올렸다. 사쿠라코가 천천히 차를 내려놓았다. 턱에 힘이 풀려버렸다.

 

"...선배?"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