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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난마리]차올라라
향유동화
2016. 9. 21. 23:41
나는 웅크려있는 자세를 좋아한다. 양수에 둘러싸여 있던 인간의 본능일지도 모른다. 바닷 속에 가만히 몸을 뉘여 몸을 웅크리고 있으면 여러 소리가 웅얼거리며 나와 하나가 되는 기분이다. 물 속에서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지만 그런 고요함이 나로 하여금 인간의 본능을 일깨워준다. 조용히, 아무런 조건 없이, 편안하게 하나가 되는 방법을 알려주는 곳이 '바다'이다.
언제나 그렇듯 바다에서 치유를 받고 있으면 누군가가 표면을 똑똑 두드린다.
"카난, 카난."
몇주 전부터 부쩍 이 바다를 자주 찾아오는 사람이 있었다. 만나자마자 이름을 묻더니, 다짜고짜 이름으로 부르는 정말 보기 드문 막말형이었다. 바다에서의 수면을 마치고 온 몸에 물을 뚝뚝 흘리면서 나오면 늘 그 여자가 있었다. 부르는 김에 나도 그냥 이름으로 부르기로 했다. 이런건 별로 내키지는 않지만.
"제발 여기 그만 좀 와, 마리."
그러면 그 햄스터 같은 입으로 꿍얼거리는 듯이 되받아친다.
"카난이 여기에 있는데."
그 말의 의미를 잘 모르는 나는 어깨를 들썩인다.
"자꾸 오면 바다에 빠뜨려버릴거야."
마리는 노란 머리에 굉장히 부티가 나는-별로 이런 식으로 설명하고 싶진 않지만 사실이다-아이다.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모를 동그란 눈에는 늘 보석이 박힌듯이 반짝였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같기도 했다. 물이 뜨거운지 찬지는 만져서 몸소 체험을 해야 깨닫는 조금 모자란 구석도 있다. 그리고 깨달음 끝에는 구름이 끼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언제나 이 말을 덧붙인다. Shiny~
"카난은 바다가 왜 좋을까."
따뜻한 차를 내어오며 우리는 바닷가에 앉았다. 마리는 컵 밑동을 얌전하게 손으로 받쳤다. 땋은 옆머리가 바닷바람에 살짝 일렁였다. 녹을것 같던 여름이 한풀 꺾이고 조금씩 날씨가 추워지고 있었다.
"내가 한번 맞혀볼까?"
"자문자답이니..."
"어차피 카난은 대답 안할거잖아?"
차를 한모금 마셨다. 가끔씩 오하라 마리는 나에 대해서 너무 잘 파악하고 있어서 바다에 던져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아니면 배에 실어서 멀리 보내버린다던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피식 웃었다. 마리는 내 웃음을 허락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혼자 열심히 생각한 결과물을 꺼냈다.
"공부 말고 수영 쪽으로 결심했다던가."
"그건 아니야."
"Treasure를 좋아하는 whild한 소녀라서?"
"아니... 난 모험 별로 안좋아하는데."
"바다에 보물을 숨겨뒀구나? under the sea~"
"....."
가끔은, 마리가 나에 대해 잘 모르는 것도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할때도 있다. 마리는 내가 바다에서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한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물이 싫다며 바다에 말 한번 담궈볼 생각을 않는다. 나로써는 그런 친구에게 바다의 참맛을 보여줄 수가 없다. 눈을 감고 귀를 닫는 정적이 무엇인지를, 시도 때도 없이 입을 놀리는 마리는 모를 것이다.
"그러는 너는 바다를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왜 자꾸 찾아오는거야?"
물어봐놓고 뻔한 질문이었음을 깨달았다. 아차 싶었으나 마리는 싱긋 웃으면서 찻잔을 슬쩍 내밀었다.
"카난이 있으니까."
"정말..."
마지못해 찻잔을 부딪혀주었다. 차를 한모금 마시다가 문득 입을 열었다.
"나도 그래서 오는거야. 바다가 여기에 있으니까."
마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카난은 바다보다 이 곳이 좋은걸지도 모르겠네."
그 말엔 고개를 가로저었다.
바다가 있기에 이 곳이 있는 것이다. 이 곳이 있기에 또한 나도 있다.
"바다, 들어가볼래?"
매일 바다에 찾아오면서 발 한번 담궈보지도 않는 마리가 조금은 안쓰러워져 함께 들어갈것을 권고해보려고 이미 오래 전부터 마음먹고 있었다. 그러나 선뜻 손이 나가지는 않았다. 물이 싫다는데 억지로 끌고 들어가기도 그렇고, 왠지 나만의 공간이 되어버린 바다에 마리가 개입하기 시작하면 조금 귀찮아질지도 모르겠다는 염려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매일같이 나를 보러 찾아와주는 친구에게, 나는 손을 내밀기로 했다.
"조금 있으면 금방 추워져서 못들어가."
마리는 바닷바람을 쐬다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그러면 카난이 입수하는 곳까지만 배를 타고 같이 들어갈게."
본인도 무언가가 아쉬웠는지 선뜻 오케이를 했다. 나는 장비와 마리를 태우고 배를 띄웠다. 해가 중천이긴 했지만 역시 가을이 오려는 것인지 바람이 찼다. 곧 바다에 들어갈수가 없게 되면 다시 반년동안 무언가에 결핍된 채 살아가야한다는 사실에 조금 숨이 막혔다. 마리가 어느새 내 곁으로 와서 바다에 빠질까봐 무서운지 팔을 꽉 잡았다.
모터 소리에 귀가 먹먹해지는 것이 조금 익숙해질 때까지 달렸다. 시동을 끄자 고요함이 찾아왔다. 나와 마리는 갑자기 말하기가 어색해져서 입을 꾹 다물었다. 긴 침묵 끝의 대화는 가끔씩 부끄러울 때가 있다.
바닷물의 온도를 살폈다. 조금 차지만 바깥 공기가 아직은 꽤 따가워서 괜찮겠지 싶었다.
"조심히 다녀와."
마리가 살짝 손을 흔들었다. 고개만 끄덕이고 곧바로 입수했다. 동굴 속에 있는 듯이 길고 긴 고동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몸을 조심스럽게 웅크렸다. 나는 다시 뱃속의 아기로 돌아갔다. 눈과 귀를 닫고 나에게 집중했다. 찬 물이 내 몸을 흡수해 자아가 흩어지는 아찔한 기분이다. 산소 탱크를 메고 잠수하면 몸이 무거워지기 때문에 맨 숨으로 들어간다. 숨이 차면 수면으로 올라가 다시 공기를 마시고 잠수하는 방식이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잔잔한 물결이 느껴졌다. 파동이 조금씩 일어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문득 잠에서 깨어 눈을 떴다. 위에서 손 하나가 나를 향해 팔을 활짝 벌리고 있었다. 그만 올라오라는 마리의 손짓일까. 혼자 오래도록 내버려둔 것이 왠지 미안해져서 발을 차 수면 위로 올라가 마리의 손을 살짝 잡았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바다 바깥으로 머리를 내밀자, 마리가 갑자기 기우뚱하더니 내쪽으로 쓰러졌다.
"마리, 위험..."
마리의 몸에 짓눌려 나는 도로 물속으로 빨려들어갔다. 물을 두려워하니 당연히 수영을 해본 적이 없는 마리는 눈을 꼭 감고 내 목에 팔을 감았다. 나는 얼른 정신을 차리고 마리를 끌어올렸다.
"푸핫!"
당황스러워서 숨을 제대로 몰아쉬지 못한 탓에 우리 둘 다 급하게 숨을 채워넣느라 정신이 없었다. 마리는 물을 먹었는지 연신 콜록댔다.
"너, 갑자기 왜 뛰어든거야? 위험하잖아!"
나에게 안겨 떨어질줄 모르는 마리를 흔들었다. 마리는 기침을 멈추더니 내 목을 휘감았던 팔에 힘을 조금 빼고 가까운 곳에서 나와 마주보았다. 급한 마리의 숨결이 코에 닿았다.
"카난이 잡아당긴거야."
"아니, 난 손만 잡았어. 내 힘으로 올라온거야."
"분명히 카난이 잡아당겼어. 순간적으로 중심을 잃고 떨어졌어."
숨을 몰아쉬면서 말하는 투가 어쩐지 기뻐보였다. 원래 마리의 톤이 높은 편이긴 하지만 신기한 것을 본 어린아이 같이 눈망울이 반짝였다.
"Shiny!"
마리가 작게 외쳤다. 옷이며 머리카락이며 다 젖어서 본래의 귀티는 사라졌지만 뭐가 그렇게 좋은지 연신 방방 뛰다가 나를 다시 껴안았다.
"엣취!"
아, 정말 어쩔 수 없는 아이다. 감기 들겠어. 마리를 안고 배까지 헤엄쳤다. 배 위에 몸을 뉘이고서야 우리는 한시름 놓았다. 마리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아직도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는 중이었다. 일 벌려놓고 참 잘도 웃는다.
마리는 내 쪽으로 쓰러지는 순간에 아차, 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의외의 순간이었다면 비명을 질렀을 것이다. 그러나 마리는 조용히 두려움을 숨긴 표정이었다. 분명 작정하고 뛰어든 것이다. 찬 물인지 더운 물인지 분간하려고 했던 것일까. 마리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나만의 세계로 훌쩍 발을 들여놓았다.
집으로 데려와서야 마리의 짐들을 발견했을 때는 나도 웃음을 터뜨렸다.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내 집에서 자겠다고 짐을 꾸려놓고 던져놓았던 것이었다. 바다에 뛰어들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옷이 다 젖는데 아무런 대책 없이 뛰어들지는 않는다, 오하라 마리는.
각자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나와 따뜻한 차를 손에 한잔씩 쥐었다. 마리는 연신 재채기를 하면서도 짧은 옷으로 갈아입었다. 하는 수 없이 가디건을 걸쳐주니 빙긋 웃으면서 내 가디건을 쓰다듬었다.
"카난이 왜 바다를 좋아하는지 알겠어."
그 말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들키고 싶지 않은 부분을 들킨 기분이었으나, 한편으로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무슨 보물을 숨겨놨나 했더니. 카난, 그런걸 몰래 느끼고 있었던거야? Hentai!"
"너무하네... 그것보다 영어 아닌 단어에 혀 굴리지 말아줄래?"
마리가 팔장을 껴왔다. 찬 물에서 건져올려진 마리의 몸은 뜨거웠다.
"나는 카난이 여기에 있어서 오는거야."
정말이야, 진심을 호소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근데 카난은 바다가 좋아서 여기에 오는거고."
예전부터 마리가 이런 분위기로 말할때 자꾸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마리는 항상 총을 들고 있었다. 한 마디씩 말하면서 장전을 한다. 그리고, 장전이 완료되면 거침없이 쏜다.
"내가 바다가 되면 카난이 날 좋아해줄까?"
고개를 돌려 마리를 바라보았다. 총알이 가슴에 맞았는지 그 언저리가 아팠다.
"카난은 바다를 닮았어. 깊고, 넓고, 그리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아. 짧은 순간이지만 느꼈어."
마리가 내 총상을 어루만져주 듯이 가슴팍에 손을 올렸다. 아팠던 상처가 나으려는 듯이 간지러워졌다.
"곧 물이 차지면 못들어가잖아."
대신에 나한테 들어와, 마리가 활짝 벌린 두 팔이 속삭였다. 마리는 불과 몇주 전에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에 불과했다. 바다에 들어올것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많은 대화를 할것도 아니면서 매일 찾아왔다. 나는 마리가 정말 귀찮았다. 나만의 공간에 그만 찾아와주길 바랐다.
나는 마리에게 조금씩 발을 담갔다. 마리가 내 발목에서부터 차오른다. 이불처럼 목까지 끌어당기고, 밑으로 잠수해서 몸을 웅크렸다. 우리는 말없이 서로에게 차올랐다. 눈물이 흘렀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마리는 온전히 나를 물들이고 있었고 시린 바닷물 대신에 따뜻함 한복판의 외로움, 동시에 알록달록한 페인트 같은 색들이 한가득 끼쳐왔다. 차올라라. 혼자 느끼던 시린 물도, 가둬두었던 빛바랜 잿빛 물도, 뜨거워질 정도로. 가을이 오고 겨울이 지나갈 동안 내가 잠수할 또 하나의 바다가 생겼다. 마리가 이 곳이 되었고, 언젠가 마리의 말처럼 나는 바다보다 이 곳이 좋아지려는 참이었다.
마리의 고동이 잔잔히 울려퍼지는 동안 눈을 감았다. 잠시 꿈을 꾸려 마리를 끌어안았다. 내 품 안에는 바다에 비춰진 달이 차게 잠겼다.
-FIN.
언제나 그렇듯 바다에서 치유를 받고 있으면 누군가가 표면을 똑똑 두드린다.
"카난, 카난."
몇주 전부터 부쩍 이 바다를 자주 찾아오는 사람이 있었다. 만나자마자 이름을 묻더니, 다짜고짜 이름으로 부르는 정말 보기 드문 막말형이었다. 바다에서의 수면을 마치고 온 몸에 물을 뚝뚝 흘리면서 나오면 늘 그 여자가 있었다. 부르는 김에 나도 그냥 이름으로 부르기로 했다. 이런건 별로 내키지는 않지만.
"제발 여기 그만 좀 와, 마리."
그러면 그 햄스터 같은 입으로 꿍얼거리는 듯이 되받아친다.
"카난이 여기에 있는데."
그 말의 의미를 잘 모르는 나는 어깨를 들썩인다.
"자꾸 오면 바다에 빠뜨려버릴거야."
마리는 노란 머리에 굉장히 부티가 나는-별로 이런 식으로 설명하고 싶진 않지만 사실이다-아이다.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모를 동그란 눈에는 늘 보석이 박힌듯이 반짝였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같기도 했다. 물이 뜨거운지 찬지는 만져서 몸소 체험을 해야 깨닫는 조금 모자란 구석도 있다. 그리고 깨달음 끝에는 구름이 끼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언제나 이 말을 덧붙인다. Shiny~
"카난은 바다가 왜 좋을까."
따뜻한 차를 내어오며 우리는 바닷가에 앉았다. 마리는 컵 밑동을 얌전하게 손으로 받쳤다. 땋은 옆머리가 바닷바람에 살짝 일렁였다. 녹을것 같던 여름이 한풀 꺾이고 조금씩 날씨가 추워지고 있었다.
"내가 한번 맞혀볼까?"
"자문자답이니..."
"어차피 카난은 대답 안할거잖아?"
차를 한모금 마셨다. 가끔씩 오하라 마리는 나에 대해서 너무 잘 파악하고 있어서 바다에 던져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아니면 배에 실어서 멀리 보내버린다던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피식 웃었다. 마리는 내 웃음을 허락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혼자 열심히 생각한 결과물을 꺼냈다.
"공부 말고 수영 쪽으로 결심했다던가."
"그건 아니야."
"Treasure를 좋아하는 whild한 소녀라서?"
"아니... 난 모험 별로 안좋아하는데."
"바다에 보물을 숨겨뒀구나? under the sea~"
"....."
가끔은, 마리가 나에 대해 잘 모르는 것도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할때도 있다. 마리는 내가 바다에서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한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물이 싫다며 바다에 말 한번 담궈볼 생각을 않는다. 나로써는 그런 친구에게 바다의 참맛을 보여줄 수가 없다. 눈을 감고 귀를 닫는 정적이 무엇인지를, 시도 때도 없이 입을 놀리는 마리는 모를 것이다.
"그러는 너는 바다를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왜 자꾸 찾아오는거야?"
물어봐놓고 뻔한 질문이었음을 깨달았다. 아차 싶었으나 마리는 싱긋 웃으면서 찻잔을 슬쩍 내밀었다.
"카난이 있으니까."
"정말..."
마지못해 찻잔을 부딪혀주었다. 차를 한모금 마시다가 문득 입을 열었다.
"나도 그래서 오는거야. 바다가 여기에 있으니까."
마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카난은 바다보다 이 곳이 좋은걸지도 모르겠네."
그 말엔 고개를 가로저었다.
바다가 있기에 이 곳이 있는 것이다. 이 곳이 있기에 또한 나도 있다.
"바다, 들어가볼래?"
매일 바다에 찾아오면서 발 한번 담궈보지도 않는 마리가 조금은 안쓰러워져 함께 들어갈것을 권고해보려고 이미 오래 전부터 마음먹고 있었다. 그러나 선뜻 손이 나가지는 않았다. 물이 싫다는데 억지로 끌고 들어가기도 그렇고, 왠지 나만의 공간이 되어버린 바다에 마리가 개입하기 시작하면 조금 귀찮아질지도 모르겠다는 염려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매일같이 나를 보러 찾아와주는 친구에게, 나는 손을 내밀기로 했다.
"조금 있으면 금방 추워져서 못들어가."
마리는 바닷바람을 쐬다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그러면 카난이 입수하는 곳까지만 배를 타고 같이 들어갈게."
본인도 무언가가 아쉬웠는지 선뜻 오케이를 했다. 나는 장비와 마리를 태우고 배를 띄웠다. 해가 중천이긴 했지만 역시 가을이 오려는 것인지 바람이 찼다. 곧 바다에 들어갈수가 없게 되면 다시 반년동안 무언가에 결핍된 채 살아가야한다는 사실에 조금 숨이 막혔다. 마리가 어느새 내 곁으로 와서 바다에 빠질까봐 무서운지 팔을 꽉 잡았다.
모터 소리에 귀가 먹먹해지는 것이 조금 익숙해질 때까지 달렸다. 시동을 끄자 고요함이 찾아왔다. 나와 마리는 갑자기 말하기가 어색해져서 입을 꾹 다물었다. 긴 침묵 끝의 대화는 가끔씩 부끄러울 때가 있다.
바닷물의 온도를 살폈다. 조금 차지만 바깥 공기가 아직은 꽤 따가워서 괜찮겠지 싶었다.
"조심히 다녀와."
마리가 살짝 손을 흔들었다. 고개만 끄덕이고 곧바로 입수했다. 동굴 속에 있는 듯이 길고 긴 고동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몸을 조심스럽게 웅크렸다. 나는 다시 뱃속의 아기로 돌아갔다. 눈과 귀를 닫고 나에게 집중했다. 찬 물이 내 몸을 흡수해 자아가 흩어지는 아찔한 기분이다. 산소 탱크를 메고 잠수하면 몸이 무거워지기 때문에 맨 숨으로 들어간다. 숨이 차면 수면으로 올라가 다시 공기를 마시고 잠수하는 방식이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잔잔한 물결이 느껴졌다. 파동이 조금씩 일어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문득 잠에서 깨어 눈을 떴다. 위에서 손 하나가 나를 향해 팔을 활짝 벌리고 있었다. 그만 올라오라는 마리의 손짓일까. 혼자 오래도록 내버려둔 것이 왠지 미안해져서 발을 차 수면 위로 올라가 마리의 손을 살짝 잡았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바다 바깥으로 머리를 내밀자, 마리가 갑자기 기우뚱하더니 내쪽으로 쓰러졌다.
"마리, 위험..."
마리의 몸에 짓눌려 나는 도로 물속으로 빨려들어갔다. 물을 두려워하니 당연히 수영을 해본 적이 없는 마리는 눈을 꼭 감고 내 목에 팔을 감았다. 나는 얼른 정신을 차리고 마리를 끌어올렸다.
"푸핫!"
당황스러워서 숨을 제대로 몰아쉬지 못한 탓에 우리 둘 다 급하게 숨을 채워넣느라 정신이 없었다. 마리는 물을 먹었는지 연신 콜록댔다.
"너, 갑자기 왜 뛰어든거야? 위험하잖아!"
나에게 안겨 떨어질줄 모르는 마리를 흔들었다. 마리는 기침을 멈추더니 내 목을 휘감았던 팔에 힘을 조금 빼고 가까운 곳에서 나와 마주보았다. 급한 마리의 숨결이 코에 닿았다.
"카난이 잡아당긴거야."
"아니, 난 손만 잡았어. 내 힘으로 올라온거야."
"분명히 카난이 잡아당겼어. 순간적으로 중심을 잃고 떨어졌어."
숨을 몰아쉬면서 말하는 투가 어쩐지 기뻐보였다. 원래 마리의 톤이 높은 편이긴 하지만 신기한 것을 본 어린아이 같이 눈망울이 반짝였다.
"Shiny!"
마리가 작게 외쳤다. 옷이며 머리카락이며 다 젖어서 본래의 귀티는 사라졌지만 뭐가 그렇게 좋은지 연신 방방 뛰다가 나를 다시 껴안았다.
"엣취!"
아, 정말 어쩔 수 없는 아이다. 감기 들겠어. 마리를 안고 배까지 헤엄쳤다. 배 위에 몸을 뉘이고서야 우리는 한시름 놓았다. 마리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아직도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는 중이었다. 일 벌려놓고 참 잘도 웃는다.
마리는 내 쪽으로 쓰러지는 순간에 아차, 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의외의 순간이었다면 비명을 질렀을 것이다. 그러나 마리는 조용히 두려움을 숨긴 표정이었다. 분명 작정하고 뛰어든 것이다. 찬 물인지 더운 물인지 분간하려고 했던 것일까. 마리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나만의 세계로 훌쩍 발을 들여놓았다.
집으로 데려와서야 마리의 짐들을 발견했을 때는 나도 웃음을 터뜨렸다.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내 집에서 자겠다고 짐을 꾸려놓고 던져놓았던 것이었다. 바다에 뛰어들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옷이 다 젖는데 아무런 대책 없이 뛰어들지는 않는다, 오하라 마리는.
각자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나와 따뜻한 차를 손에 한잔씩 쥐었다. 마리는 연신 재채기를 하면서도 짧은 옷으로 갈아입었다. 하는 수 없이 가디건을 걸쳐주니 빙긋 웃으면서 내 가디건을 쓰다듬었다.
"카난이 왜 바다를 좋아하는지 알겠어."
그 말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들키고 싶지 않은 부분을 들킨 기분이었으나, 한편으로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무슨 보물을 숨겨놨나 했더니. 카난, 그런걸 몰래 느끼고 있었던거야? Hentai!"
"너무하네... 그것보다 영어 아닌 단어에 혀 굴리지 말아줄래?"
마리가 팔장을 껴왔다. 찬 물에서 건져올려진 마리의 몸은 뜨거웠다.
"나는 카난이 여기에 있어서 오는거야."
정말이야, 진심을 호소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근데 카난은 바다가 좋아서 여기에 오는거고."
예전부터 마리가 이런 분위기로 말할때 자꾸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마리는 항상 총을 들고 있었다. 한 마디씩 말하면서 장전을 한다. 그리고, 장전이 완료되면 거침없이 쏜다.
"내가 바다가 되면 카난이 날 좋아해줄까?"
고개를 돌려 마리를 바라보았다. 총알이 가슴에 맞았는지 그 언저리가 아팠다.
"카난은 바다를 닮았어. 깊고, 넓고, 그리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아. 짧은 순간이지만 느꼈어."
마리가 내 총상을 어루만져주 듯이 가슴팍에 손을 올렸다. 아팠던 상처가 나으려는 듯이 간지러워졌다.
"곧 물이 차지면 못들어가잖아."
대신에 나한테 들어와, 마리가 활짝 벌린 두 팔이 속삭였다. 마리는 불과 몇주 전에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에 불과했다. 바다에 들어올것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많은 대화를 할것도 아니면서 매일 찾아왔다. 나는 마리가 정말 귀찮았다. 나만의 공간에 그만 찾아와주길 바랐다.
나는 마리에게 조금씩 발을 담갔다. 마리가 내 발목에서부터 차오른다. 이불처럼 목까지 끌어당기고, 밑으로 잠수해서 몸을 웅크렸다. 우리는 말없이 서로에게 차올랐다. 눈물이 흘렀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마리는 온전히 나를 물들이고 있었고 시린 바닷물 대신에 따뜻함 한복판의 외로움, 동시에 알록달록한 페인트 같은 색들이 한가득 끼쳐왔다. 차올라라. 혼자 느끼던 시린 물도, 가둬두었던 빛바랜 잿빛 물도, 뜨거워질 정도로. 가을이 오고 겨울이 지나갈 동안 내가 잠수할 또 하나의 바다가 생겼다. 마리가 이 곳이 되었고, 언젠가 마리의 말처럼 나는 바다보다 이 곳이 좋아지려는 참이었다.
마리의 고동이 잔잔히 울려퍼지는 동안 눈을 감았다. 잠시 꿈을 꾸려 마리를 끌어안았다. 내 품 안에는 바다에 비춰진 달이 차게 잠겼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