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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타×피네]그대만의 마녀
향유동화
2016. 12. 17. 12:33
*하나의 또다른 픽션이라고 생각해주세요
피네 공주님. 아니, 피네.
그 하얗고 뽀얀 얼굴과 고운 감성으로 백성들을 아우르시는 멋진 분이십니다.
피네 앞에 있으면 저도 모르게 무릎을 꿇게 됩니다.
곧 날개를 펼치고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하늘로 솟구칠것 같은 그 기상.
어떤 것에도 쉽사리 무너지지 않는 강인한 눈빛과 행동.
백성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던 피네는,
그러나 사실은 그 모습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의 모습일 것입니다.
전쟁이 일어나고 피네의 몸은 많이 약해진 것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잠들어있었기에 예전의 피네가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어느날... 피네의 그 강인한 앞모습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뒷모습을 보고 말았습니다.
안아주려 앞으로 나아갈때,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피네가 눈물을 닦으며 조용히, 근엄하게, 그러나 두려움 섞인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이제타. 전쟁이 끝나면 모든 것이 끝난다."
마치, 자신을 달래는 듯 하면서도 저에게 무언가를 이르는 듯 했습니다.
저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하고 그저 그 자리에 굳어버렸습니다.
피네가, 아니, 공주님이 다시 이르셨습니다.
"이리 오렴, 이제타."
***
시린 달빛이 구름 한점 없는 하늘 아래를, 이 나라를 온전히 비추고 있었다. 많이 망가진 나라지만 피네 만큼이나 굳건한 국민들은 조금씩 나라와 함께 무서진 마음을 재건하는 중이었다.
피네는 많이 침통해보였다. 테라스에서 내가 씻고 나올때까지 방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한 나라의 왕이라는건 저토록 여리고 어린 몸에도 가차없는 것이다. 너무 일찍 모든 것을 짊어지고 책임지고 통솔하는 피네의 마음에는 무엇이 자리하고 있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피네가 문득 뒤돌더니 나를 보며 웃으면서 손짓했다. 나는 테라스 문을 열고 나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달빛을 쐬었다. 우리는 난간에 기대었다.
"이 전쟁이 끝날 수 있을까?"
"....응?"
"그대와의 약속을 지킬수 있을지 걱정이구나."
"약속...?"
"그래. 모든 나라를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약속."
피네가 허탈하게 웃었다.
"결국 그대와 지키려던 약속을 내 손으로 해내지는 못할 것 같구나. 그대를 어김없이 끌어들일 것이고, 그대로 하여금 천하가 평화로워지겠지."
"그건 아니야. 피네가 없었으면 난 움직이지 못했어."
피네의 부드러운 시선이 나를 향했다.
"힘이 없어 매번 도망치기만 하던 나인데...?"
하지만 그것이 피네의 잘못은 아님을 국민들도, 궁전에 있는 모든 사람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손을 들어 마력을 체크했다. 초록색 마력이 조금 샘솟았다.
"피네는 힘이 없는게 아니야. 피네는 평범한 인간이니까. 난 마녀니까 그런 일들이 가능했던거고..."
피네가 내 손을 덥석 잡았다. 마력이 피네의 온기와 닿아 한순간 사라졌다. 화들짝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피네는 눈에 힘을 주고 있었다. 마치 골치 아픈 국정 문서를 살필때 처럼.
"그 표현은 마음에 들지 않는구나. 마녀라는 표현 말이다."
"...하지만 난 전설의 하얀 마녀..."
"아니, 요 며칠간 계속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대를 소개할때 마녀라고 하던 것이 너무 마음에 걸렸어. 이상하리만치. 난 그 이유를 고민했지. 그리고..."
그 보라색 눈빛이 은하수 같았다. 하늘의 모든 것이 담긴것 같은 황홀한 눈을 나는 놓칠수가 없었다.
"난 그대를 더이상 마녀라 칭하지 않을 생각이다."
"어째서...?"
"들어보렴, 이제타."
피네의 표정이 다시 부드러워졌다. 긴장했던 내 마음도 한층 풀렸다. 피네의 손이 죄 많은 내 손을 어루만졌다.
"선왕 때, 선왕의 선왕, 그 선왕 때에서부터 마녀란 사람들에게 두려운 존재였다. '마녀사냥'이라는 단어도 거기에서 탄생했고. 인간들은 그래. 인간의 힘을 초월하면 금방 겁을 먹고 적으로 인식해. 이제와서 그대를 보니, 나는 인간들이 생각하는 그 마녀의 이름이 그대에게 붙는 것이 싫어졌다. 그 뿐이야."
"피네..."
"이제타, 그대는 이 나라의 영웅이다. 나의 하나뿐인 친구이고. 절대 그대에게 사악하고 두려운 마녀의 이름이 따라붙게 하고 싶지는 않아."
피네의 표정은 슬퍼보였다. 아니, 그 눈에 비춰진 내가 슬퍼보였다. 확실히 나는 인간들이 두려워할 힘을 가졌다. 지금까지는 나라의 영웅으로 떠받들어지고 있지만 언젠가 나는 국민들로부터 추방당할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치밀자, 목 끝까지 무언가가 울컥 차올랐다. 피네가 놀라며 내 손을 더 꽉 잡았다.
"이제타, 갑자기 왜 그러느냐? 어디가 불편하느냐?"
"아니... 아니야."
"지금 그대... 울고 있지 않은가..."
추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자꾸 울음을 삼켰다. 그러나 눈물까지는 막을 도리가 없었다. 피네는 더이상 묻지 않고 나의 눈물을 받아주었다. 향기로운 피네의 향기가 코 끝을 감쌌다. 눈을 감았다.
내가 아무리 비참하고 슬프고 기구한 운명을 지녔던들 피네 만 할까. 우뚝 서있으나 실은 다리가 너무 아파서 앉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피네의 명령을 받는 한낱 마녀에 불과하지만 감히 피네를 읽었다. 인간이 아니지만 감히 피네의 친구이다. 모든 것들이 너무 과분하다.
그래서 잠시 생각했다. 이 힘을 모두 버려서라도 피네의 친구, 인간으로 남고 싶다고.
"이제타. 전쟁이 끝나면 모든 것이 끝난다."
피네의 목소리가 자장가를 불러주듯이 평온히, 그러나 위엄있게 울려퍼졌다.
"고통스러워하는 국민들의 한숨도, 숨이 막힐것 같은 이 어둠도, 지고 있는 수많은 목숨들도 전부... 그런데, 이제타. 반드시 고통스럽고 힘든 것만 끝나는게 아니야."
내 뻣뻣한 머리카락을 피네의 손가락이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피네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 내가 끌어안은 곳은 도저히 허리라고는 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아픔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러한 소소한 일상들. 힘든 과정에서만 느낄 수 있는 소중함과 사랑. 그런것들이 잠시동안, 혹은 긴 시간 동안... 사라진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피네가 픽 웃는 숨이 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그대와의 이 시간을 잃고 싶지 않다. 그래서 정말 못된 생각이지만, 잘못된 생각이지만, 이 숨이 막힐듯한 어둠이 나는 마냥 싫지는 않구나. 이제타, 나의 친구와 함께하는 이 온기가 너무나도 좋아..."
나를 보듬어주던 피네의 몸이 떨렸다. 나는 피네의 몸을 더욱 끌어안았다.
"난... 대공의 자리에 적격이 아니다. 그렇지? 국민들은, 내 사람들은 죽어가는데 이 나라의 대공이라는 자는 어둠이 싫지 않다고 하고 있다니, 나는 정말 얼마나 못되고... 자격이 없는지..."
피네는 모든 것들 토해내고 있었다. 어둠만은 고요했다. 내일 아침 다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세상. 수많은 죄없는 사람들이 욕심 많은 자들에 의해 짓밟히고 사라지는 세상. 그 세상 속에서 피네는 많은 것을 고민했을 것이다.
"공주님."
"...응."
"어둠은 자신이 들은 말을 그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거든요."
나는 피네의 그 어떤 모습이라도 사랑하고 따를 수 있다. 사람이란 항상 올곧을 수만은 없는 것이다.
돌연 내 목에 뜨거운 무언가가 닿았다. 놀라서 피네를 떨어뜨려놓으려고 하자, 피네가 먼저 나를 놓았다. 차갑고도 가녀린, 아픈 그 손이 내 볼을 한번 쓸어내렸다.
"그대는 내가 어떤 짓을 해도 나를 따를 수 있는가?"
"...네."
"내가 의지를 상실하고 이 나라를 등지고 도망쳐도?"
"대공전하를 따르겠습니다."
"어째서... 어째서...?"
어디선가 시끄러운 프로펠러 소리가 들려왔다. 일발의 총성.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있는 피네의 듬직한 뒷모습. 가슴 아린 피네의 피 냄새.
그리고, 공중에서 내 손을 맞잡은 피네의 한떨기 미소.
"저는 대공전하가 아니었다면 에일슈타트에 존재할 수 없는 마녀인걸요."
마녀라는 말에 피네가 잠시 얼굴을 찌푸렸으나 이내 어쩔수 없다는 듯 웃었다.
"오늘 부탁 하나만 하고 싶구나."
"말씀하세요."
피네가 헝클어진 자신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잠시 피네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보였다.
"나를 진심으로 위한다면... 이렇게 부끄럽고 한없이 낮은 나를 잠시동안만... 품어줄 수 있겠느냐?"
오른 손을 심장 위에 올려놓고 고개를 숙였다. 피네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런 나를 마주하려면 조금 아플지도 모른다."
"상관없습니다."
"나에게 실망할지도 몰라."
그 손에 입을 맞추었다. 피네가 지금 이 마음을 조금이라도 놓을 수 있다면 그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것만 같은 용기가 샘솟았다.
"이리 오렴, 이제타."
만일 신이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다면 필시 피네의 저 아름다운 미소를 닮았을 것이다. 달빛이 피네를 감싸안았다.
아, 그 영롱하고 부드러운 살갗, 열정으로 가득한 심장, 한글자 한글자 또박또박한 입술, 나는 그 모든 것들 아무 이유 없이 사랑하기로 했다. 어린 피네의 가슴 속에 피어오르는 어둠마저 싫지 않다는 그 마음과 알수 없는 것에 이끌리는 나의 마음도 모두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피네, 그대만의 마녀이니까.
피네만이 내 행복이다.
-FIN.
피네 공주님. 아니, 피네.
그 하얗고 뽀얀 얼굴과 고운 감성으로 백성들을 아우르시는 멋진 분이십니다.
피네 앞에 있으면 저도 모르게 무릎을 꿇게 됩니다.
곧 날개를 펼치고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하늘로 솟구칠것 같은 그 기상.
어떤 것에도 쉽사리 무너지지 않는 강인한 눈빛과 행동.
백성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던 피네는,
그러나 사실은 그 모습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의 모습일 것입니다.
전쟁이 일어나고 피네의 몸은 많이 약해진 것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잠들어있었기에 예전의 피네가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어느날... 피네의 그 강인한 앞모습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뒷모습을 보고 말았습니다.
안아주려 앞으로 나아갈때,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피네가 눈물을 닦으며 조용히, 근엄하게, 그러나 두려움 섞인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이제타. 전쟁이 끝나면 모든 것이 끝난다."
마치, 자신을 달래는 듯 하면서도 저에게 무언가를 이르는 듯 했습니다.
저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하고 그저 그 자리에 굳어버렸습니다.
피네가, 아니, 공주님이 다시 이르셨습니다.
"이리 오렴, 이제타."
***
시린 달빛이 구름 한점 없는 하늘 아래를, 이 나라를 온전히 비추고 있었다. 많이 망가진 나라지만 피네 만큼이나 굳건한 국민들은 조금씩 나라와 함께 무서진 마음을 재건하는 중이었다.
피네는 많이 침통해보였다. 테라스에서 내가 씻고 나올때까지 방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한 나라의 왕이라는건 저토록 여리고 어린 몸에도 가차없는 것이다. 너무 일찍 모든 것을 짊어지고 책임지고 통솔하는 피네의 마음에는 무엇이 자리하고 있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피네가 문득 뒤돌더니 나를 보며 웃으면서 손짓했다. 나는 테라스 문을 열고 나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달빛을 쐬었다. 우리는 난간에 기대었다.
"이 전쟁이 끝날 수 있을까?"
"....응?"
"그대와의 약속을 지킬수 있을지 걱정이구나."
"약속...?"
"그래. 모든 나라를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약속."
피네가 허탈하게 웃었다.
"결국 그대와 지키려던 약속을 내 손으로 해내지는 못할 것 같구나. 그대를 어김없이 끌어들일 것이고, 그대로 하여금 천하가 평화로워지겠지."
"그건 아니야. 피네가 없었으면 난 움직이지 못했어."
피네의 부드러운 시선이 나를 향했다.
"힘이 없어 매번 도망치기만 하던 나인데...?"
하지만 그것이 피네의 잘못은 아님을 국민들도, 궁전에 있는 모든 사람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손을 들어 마력을 체크했다. 초록색 마력이 조금 샘솟았다.
"피네는 힘이 없는게 아니야. 피네는 평범한 인간이니까. 난 마녀니까 그런 일들이 가능했던거고..."
피네가 내 손을 덥석 잡았다. 마력이 피네의 온기와 닿아 한순간 사라졌다. 화들짝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피네는 눈에 힘을 주고 있었다. 마치 골치 아픈 국정 문서를 살필때 처럼.
"그 표현은 마음에 들지 않는구나. 마녀라는 표현 말이다."
"...하지만 난 전설의 하얀 마녀..."
"아니, 요 며칠간 계속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대를 소개할때 마녀라고 하던 것이 너무 마음에 걸렸어. 이상하리만치. 난 그 이유를 고민했지. 그리고..."
그 보라색 눈빛이 은하수 같았다. 하늘의 모든 것이 담긴것 같은 황홀한 눈을 나는 놓칠수가 없었다.
"난 그대를 더이상 마녀라 칭하지 않을 생각이다."
"어째서...?"
"들어보렴, 이제타."
피네의 표정이 다시 부드러워졌다. 긴장했던 내 마음도 한층 풀렸다. 피네의 손이 죄 많은 내 손을 어루만졌다.
"선왕 때, 선왕의 선왕, 그 선왕 때에서부터 마녀란 사람들에게 두려운 존재였다. '마녀사냥'이라는 단어도 거기에서 탄생했고. 인간들은 그래. 인간의 힘을 초월하면 금방 겁을 먹고 적으로 인식해. 이제와서 그대를 보니, 나는 인간들이 생각하는 그 마녀의 이름이 그대에게 붙는 것이 싫어졌다. 그 뿐이야."
"피네..."
"이제타, 그대는 이 나라의 영웅이다. 나의 하나뿐인 친구이고. 절대 그대에게 사악하고 두려운 마녀의 이름이 따라붙게 하고 싶지는 않아."
피네의 표정은 슬퍼보였다. 아니, 그 눈에 비춰진 내가 슬퍼보였다. 확실히 나는 인간들이 두려워할 힘을 가졌다. 지금까지는 나라의 영웅으로 떠받들어지고 있지만 언젠가 나는 국민들로부터 추방당할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치밀자, 목 끝까지 무언가가 울컥 차올랐다. 피네가 놀라며 내 손을 더 꽉 잡았다.
"이제타, 갑자기 왜 그러느냐? 어디가 불편하느냐?"
"아니... 아니야."
"지금 그대... 울고 있지 않은가..."
추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자꾸 울음을 삼켰다. 그러나 눈물까지는 막을 도리가 없었다. 피네는 더이상 묻지 않고 나의 눈물을 받아주었다. 향기로운 피네의 향기가 코 끝을 감쌌다. 눈을 감았다.
내가 아무리 비참하고 슬프고 기구한 운명을 지녔던들 피네 만 할까. 우뚝 서있으나 실은 다리가 너무 아파서 앉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피네의 명령을 받는 한낱 마녀에 불과하지만 감히 피네를 읽었다. 인간이 아니지만 감히 피네의 친구이다. 모든 것들이 너무 과분하다.
그래서 잠시 생각했다. 이 힘을 모두 버려서라도 피네의 친구, 인간으로 남고 싶다고.
"이제타. 전쟁이 끝나면 모든 것이 끝난다."
피네의 목소리가 자장가를 불러주듯이 평온히, 그러나 위엄있게 울려퍼졌다.
"고통스러워하는 국민들의 한숨도, 숨이 막힐것 같은 이 어둠도, 지고 있는 수많은 목숨들도 전부... 그런데, 이제타. 반드시 고통스럽고 힘든 것만 끝나는게 아니야."
내 뻣뻣한 머리카락을 피네의 손가락이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피네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 내가 끌어안은 곳은 도저히 허리라고는 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아픔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러한 소소한 일상들. 힘든 과정에서만 느낄 수 있는 소중함과 사랑. 그런것들이 잠시동안, 혹은 긴 시간 동안... 사라진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피네가 픽 웃는 숨이 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그대와의 이 시간을 잃고 싶지 않다. 그래서 정말 못된 생각이지만, 잘못된 생각이지만, 이 숨이 막힐듯한 어둠이 나는 마냥 싫지는 않구나. 이제타, 나의 친구와 함께하는 이 온기가 너무나도 좋아..."
나를 보듬어주던 피네의 몸이 떨렸다. 나는 피네의 몸을 더욱 끌어안았다.
"난... 대공의 자리에 적격이 아니다. 그렇지? 국민들은, 내 사람들은 죽어가는데 이 나라의 대공이라는 자는 어둠이 싫지 않다고 하고 있다니, 나는 정말 얼마나 못되고... 자격이 없는지..."
피네는 모든 것들 토해내고 있었다. 어둠만은 고요했다. 내일 아침 다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세상. 수많은 죄없는 사람들이 욕심 많은 자들에 의해 짓밟히고 사라지는 세상. 그 세상 속에서 피네는 많은 것을 고민했을 것이다.
"공주님."
"...응."
"어둠은 자신이 들은 말을 그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거든요."
나는 피네의 그 어떤 모습이라도 사랑하고 따를 수 있다. 사람이란 항상 올곧을 수만은 없는 것이다.
돌연 내 목에 뜨거운 무언가가 닿았다. 놀라서 피네를 떨어뜨려놓으려고 하자, 피네가 먼저 나를 놓았다. 차갑고도 가녀린, 아픈 그 손이 내 볼을 한번 쓸어내렸다.
"그대는 내가 어떤 짓을 해도 나를 따를 수 있는가?"
"...네."
"내가 의지를 상실하고 이 나라를 등지고 도망쳐도?"
"대공전하를 따르겠습니다."
"어째서... 어째서...?"
어디선가 시끄러운 프로펠러 소리가 들려왔다. 일발의 총성.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있는 피네의 듬직한 뒷모습. 가슴 아린 피네의 피 냄새.
그리고, 공중에서 내 손을 맞잡은 피네의 한떨기 미소.
"저는 대공전하가 아니었다면 에일슈타트에 존재할 수 없는 마녀인걸요."
마녀라는 말에 피네가 잠시 얼굴을 찌푸렸으나 이내 어쩔수 없다는 듯 웃었다.
"오늘 부탁 하나만 하고 싶구나."
"말씀하세요."
피네가 헝클어진 자신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잠시 피네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보였다.
"나를 진심으로 위한다면... 이렇게 부끄럽고 한없이 낮은 나를 잠시동안만... 품어줄 수 있겠느냐?"
오른 손을 심장 위에 올려놓고 고개를 숙였다. 피네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런 나를 마주하려면 조금 아플지도 모른다."
"상관없습니다."
"나에게 실망할지도 몰라."
그 손에 입을 맞추었다. 피네가 지금 이 마음을 조금이라도 놓을 수 있다면 그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것만 같은 용기가 샘솟았다.
"이리 오렴, 이제타."
만일 신이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다면 필시 피네의 저 아름다운 미소를 닮았을 것이다. 달빛이 피네를 감싸안았다.
아, 그 영롱하고 부드러운 살갗, 열정으로 가득한 심장, 한글자 한글자 또박또박한 입술, 나는 그 모든 것들 아무 이유 없이 사랑하기로 했다. 어린 피네의 가슴 속에 피어오르는 어둠마저 싫지 않다는 그 마음과 알수 없는 것에 이끌리는 나의 마음도 모두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피네, 그대만의 마녀이니까.
피네만이 내 행복이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