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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마루]현재 노래를 반복합니다

향유동화 2017. 3. 2. 22:08
정말, 말도 안되는 가문이다. 하나마루는 첫 인상에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는 모든 것을 자신의 아래에 두고 있었다. 웃는 인상이었지만 온 세상은 그녀의 눈동자 밑에 비쳤다. 입학하고 이사장의 첫 연설을 듣던 날 장내의 모든 학생들이 술렁이는 도중에 하나마루의 머릿 속도 복잡해졌다.
정말, 말도 안되는 가문이다.
그럼에도 조명을 받는 그녀의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가슴이 뛰었다.
형용할 수 없이 멋졌다.




본래 하고싶었던 대로 도서관 위원으로 들어가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창가를 뚫고 들어오는 햇살에 가벼운 눈길을 줄 수 있는 공간, 잠시 날아든 작은 씨앗에 손을 뻗을 수 있는 공간, 하나마루는 그런 도서관이 좋았다. 책을 읽는 것 뿐만 아니라 음악을 들으며 누군가의 손길을 원없이 탄 책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일 또한 즐겼다. 딱히 취향이랄것도 없이 거의 모든 장르의 음악을 듣는 편이었다. 그러나 어쩐지 정이 가지 않는 노래가 딱 하나 있었다. 언제 다운받았는지도 모를 노래가 목록에 자리하고 있었다. 신나게 음악을 즐기다가 그 노래가 나올때면 하나마루는 잠시 미간을 찌푸리며 다음 곡으로 넘겼다. 듣지 않으면 삭제해도 될 일이지만 마치 쓰다 남은 공책처럼, 꼭 어디엔가에 쓰일것만 같아 조마조마한 이상한 마음으로 남겨두고 있었다. 어쩌면 물건을 함부로 버리지 못하는 성격 탓일지도 모르겠다. 헌 책이라도 절대 남에게 주지 않고 책장에 끼워넣는 버릇이 옮았나보다.
그 노래를, 하나마루는 딱 한번 들은 적이 있다. 학교에 입학하기 전. 휴대폰을 새것으로 바꾸며 노래 목록을 채워갈때 들었다. 분명 다운받았을때는 별 생각 없이 노래가 좋다는 느낌 뿐이었는데. 그 노래는 그 이후 재생할수가 없었다.

"하나마루, 책도 좋지만 사람과의 의사소통도 중요해."

소꿉친구인 루비가 항상 버릇처럼 하던 말이었다. 이어폰을 끼고 책을 읽고 있던 하나마루가 이어폰 한쪽을 빼고 루비를 바라보았다. 이제 친구가 없어지면 당황하지 않고 곧바로 도서관으로 찾아와주는 고마운 친구이다. 오늘은 이 쯤 할까. 하나마루가 언제나 그랬듯 웃으며 책을 덮고 일어났다.

"그래요, 사람과 사람 사이가 중요한거지요."

낯선 목소리에 루비와 하나마루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하나마루는 보았다. 자신과 루비가 그 사람의 눈동자 아래에 비치는 것을.

"이... 이사장님?"
"그냥 마리라고 불러. 교복 입고 있는데 그런 호칭은 이상하잖아?"

오하라 가문의 마리가 웃었다. 이사장님, 그 말을 되뇌이다 하나마루가 문득 팔뚝을 쓰다듬었다. 다시 들어도 이상한 호칭이다.

"여긴 어쩐 일로..."

이사장이라는 사람이 하릴없이 학교를 쏘다닐 때도 있는건가. 루비가 버벅거리며 옆으로 살짝 비껴서자 마리가 허리 아래로 가볍게 손을 가로저었다.

"도서 위원이 일을 잘 하나 볼 때도 된것 같아서. 쿠니기다 하나마루 맞지?"
"네...네."
"그쪽은?"

마리가 고개를 돌리자 루비가 잔뜩 긴장한 채 목에 힘을 주었다.

"쿠, 쿠로사와 루비라고 해요."
"루비, 하나마루. 앞으로 도서관 잘 부탁해요."

노란 봄빛이 스쳐 지나갔다. 잠시동안 시간이 멈췄던것 같기도 했다. 아니, 어쩌면 그의 몇배가 되는 시간이 흘렀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루비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하나마루에게 쓴 웃음을 지어보이다가 그대로 굳었다.

"...싫어."
"응?"

하나마루는 싫다고 말했다. 조금 무거운 표정으로, 어쩌면 두려워하고 있는 표정으로.

"난 저런 사람이 싫어."








이제 당분간은 올 일이 없겠지. 이사장이라니까 할 일이 많을거야. 하나마루는 그렇게 자신을 진정시켰다. 입학식날에 봤던 마리와는 또다른 느낌이었다. 한 사람에게서 두가지 감정이 동시에 느껴질수도 있는건가. 그것도 완전히 정 반대의 감정이.
그러나 하나마루의 바람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며칠 후 이어폰을 꽂고 도서를 정리하려 책들을 옮기고 있던 길목에 어느 순간 이사장이 떡하니 버티고 책을 펼쳐보고 있었다. 마리는 별 흥미 없다는 표정으로 이것 저것 뒤져보다가 하나마루를 보고 뿌듯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하~이~"

하나마루는 고개를 살짝 끄덕인 후 조심스럽게 옆을 비껴 지나가려고 했다. 이사장은 할 일이 없나보다. 자꾸 이런 데를 찾아오고, 꼭 나를 만나러 오는 사람처럼...

"요즘은 어떤 책이 읽기가 좋으려나."

멈칫, 들고 있던 책이 흔들렸다. 혼잣말 같으나 분명 말을 걸어오는 나긋한 목소리였다.

"대체 어떤 책을 읽기에 하나마루는 도서관에서 나오지를 않을까?"

하나마루가 조심스럽게 심호흡을 했다.

"이쪽 칸은 전문 서적 뿐이예요. 반대편으로 가야 소설책이..."
"도서 위원, 그만 뒀으면 좋겠는데."
"....네?"

뜬금없이 직격폭탄. 하나마루가 들고 있던 책이 쏟아지려던 찰나 마리가 슬쩍 손을 옮겨 반대편을 받쳐주었다. 이 사람, 뭔데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인가. 진심인가. 그 눈빛을 뚫어지게 쳐다보았지만 별다른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다. 마리는 순간적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그 어떤 감정도 넣지 않고 말하고 있었다. 입고리는 올라가있지만.

"무슨 말씀을 하시는건지 모르겠네요."
"루비한테 들었거든. 하나마루가 왜 도서관에 있는지."

역시, 기분 나쁜 이유가 있었다.

"그걸 왜 루비에게 묻고 다니는거예요?"

마리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한번 손짓하더니, 받쳐주던 손을 놓고 어디론가로 앞서갔다. 대체 내가 모르는 곳에서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걸까. 하나마루는 책 더미를 그대로 내려놓고 잠시 임무도 잊은 채 마리를 뒤따라갔다.
마리는 이사장실로 들어갔다. 이사장실에서는 진한 나무 냄새가 났다. 갓 나온 책처럼 산뜻한 향기였다. 저도 모르게 이사장실 이곳 저곳을 눈짓으로 훑어보다가 마지막에 이쪽을 등지고 운동장을 바라보고 있는 마리의 뒷모습이 박혔다.

"아마 속으로 crazy, 미쳤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왜 갑자기 나서서 도서 위원을 그만두라고 하는지."
"....."
"혼자 오래 있다보면 좋지 않아. never."

마리가 살짝 옆을 돌아보았다. 하나마루는 처음으로 마리의 시선이 아래로 향하는 것을 보았다. 늘 정면을 바라보고 있던 그 시선이, 정처없이 밑으로 깔리고 있었다.

"내 친구 중에 꼭 하나마루같이 조용한 친구가 있거든."

마리가 이윽고 뒤를 돌아보았다.

"며칠 전 책을 읽고 있던 하나마루의 표정이 꼭 그 친구 같아서."
"그게 이사장님과 무슨 상관이죠?"

하나마루는 얼른 다시 하던 일을 마저 끝내고 싶었다. 이사장실까지 불러와서 한다는 소리가 고작 자신의 친구 이야기라니.

"물론, 상관 없어. but. 난 내 친구처럼 혼자 갇혀서 학교도 나오지 않는 그런 사람을 더이상 만들고 싶지 않아."
"....무슨...."
"하나마루는 지금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는거야."

마리가 이쪽으로 걸어왔다. 마리는 하나마루보다 키가 조금 더 컸다. 다시 그 시선 아래에 깔리는건가, 이를 악 물던 그때 마리가 돌연 허리를 낮추더니 시선을 맞추었다.

"하나마루는 my student니까. 언제든지 상담이 필요하면 찾아와도 ok."

머리가 묵직해져왔다. 마리의 손길이 부드럽게 하나마루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조금 더 넓은 세계를 봐. 혹시 지금 멈춰있지는 않은지."

나는 책이 좋다. 글자를 손으로 훑는다. 마음으로 감싸안는다. 혼자임을 잊는다. 수군거림이 사라진다. 책을 읽고 있으면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다. 나는 오로지 책에 살고, 루비에 이끌린다. 차라리 그게 훨씬 편하다. 라고 생각해왔을 터인데...

"노래를..."
"응?"

멋대로 입이 열렸다.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는 반짝이는 눈에 빨려들어갈 듯이 아찔했다. 하나마루가 다시 문득 팔둑을 잡았다. 갑자기 마음에 걸리는게 하나 생겼다.

"도서 위원은 관두지 않아요."
"그러면?"

마음이 가벼워졌다. 주머니 안에 손을 넣자 휴대폰이 만져졌다.
어쩐지 할 수 없던 일을 할수 있을것 같다. 웃음이 났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마리가 어깨를 으쓱하면서 하나마루의 머리에서 어깨를, 어깨에서 손끝을 손으로 훑더니 마술을 하듯이 손바닥을 하나마루 눈 앞에 보였다가 뒷짐을 지었다.

"상처가 나면 아프지. 하지만 치료하려면 상처를 갈라봐야 할 때도 있어. 혹시 내병은 아닌지. 외상인지."

그 말을 하는 마리의 표정이 한층 진지해졌다.

"하나마루는 어때? 왜 아픈것 같아?"

마리가 청진기를 대어 살며시 하나마루의 배에 가져다댔다. 하나마루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내쉬었다.

"고마워요."

대답 대신, 고맙다는 말. 마리가 픽 웃었다.

"이제 가보도록 하세요, my student."

진찰은 끝났다. 처방전은 이미 받았다. 하나마루는 이사장실을 나서는 길에 휴대폰을 꺼내 노래 목록을 훑어보다가 그 노래를 찾았다. 저 사람은 분명 기분 나쁘다. 그러나 하나마루는 한편으로 조명 아래의 그 빛을 기억했다. 반대로 그저 그랬던, 나쁘지 않던 노래가 그 사람 앞에서 빛을 잃어갔다. 한번밖에 듣지 않았던 그 노래는 자신과 너무나도 닮아서, 빛을 잃어가는 그 모습을 외면했다. 단 한번으로 질려버렸다.
그러나 순간, my student, 그 속삭이는 한마디에 다시금 팔둑을 잡아본다.
이어폰을 끼고 재생 버튼을 누르기 전에 왼쪽 하단의 작은 버튼을 눌렀다. 곧 안내 글자가 떴다.

현재 노래를 반복합니다.







"내 친구가 예전부터 많이 아파."

다이아는 동생의 간절한 고민을 차마 모른척 할수가 없었다.

"처방전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긴 있어요."

다이아가 지그시 웃었다.

"조금은 더 아프겠지만요."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