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요리사]한 정거장 사이
[먼저 연습하고 있을 테니 천천히 와.]
유키나의 문자에 알겠다는 답장을 보내고 고개를 들어 전광판을 올려다보았다. 댄스부 동아리 일 때문에 학교 일이 늦게 끝나버려서 연습에 늦게 참여하게 되었다. 학교에 올릴 공연 때문에 조금 분주하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잦을 것 같다. 유키나가 이미 멤버들에게 알려줬을지도 모르겠지만, 밴드 연습을 빠져야 할 날이 올 수도 있기 때문에 멤버들에게 직접 전달하는 편이 낫겠다.
다른 멤버들은 먼저 가 있겠지. 버스는 곧 도착이다. 어깨에 짊어진 베이스가 오늘따라 유난히 무겁다. 날씨가 많이 더워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버스가 도착하고 카드를 꺼내려 주머니를 뒤지고 있을 때, 옆에서 누군가가 나를 툭툭 건드렸다.
"...이마이 씨?"
고개를 돌리니 나와 똑같이 기타를 등에 메고 눈을 크게 뜨고 있는 사요가 보였다.
"어... 어, 사요?! 먼저 가 있는 거 아니었어?"
"오늘 궁도부 연습 때문에요. 이마이 씨는..."
사요는 그렇게 물으려다가 문득 내 앞쪽을 바라보더니 내 허리에 손을 올리고 슬며시 앞으로 밀었다.
"우선 버스에 들어가서 이야기하죠. 줄이 길어요."
"으응, 그래."
줄은 길었지만 앞에 선 덕분에 다행히 뒤에 두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내가 먼저 안쪽으로 들어가서 앉고, 사요가 내 옆에 앉았다. 사요는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 한동안 말이 없더니 입을 열었다.
"그러고보니 방금 전에 미나토 씨가 준 문자를 받았는데 거기에 이마이 씨 일도 적혀있었던 것 같네요. 댄스부 연습 때문이라고."
"학교에 공연을 올려야 해서... 아하하, 직접 이야기 하려고 했는데 이미 유키나가 문자를 돌렸구나?"
"밴드 연습에만 매진할 수 없으니 이마이 씨는 댄스부도 열심히 해야겠군요."
살짝 사요의 옆모습을 엿보았다. 사요는 줄곧 정면을 보면서 팔장을 끼고 등받이에 등을 댄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가끔, 사요는 정말 밴드와 음악밖에 모르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직선만 바라보는 느낌이었는데 요즘엔 조금씩 옆도 봐주고 뒤도 돌아봐주는 것 같아서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사요도 이제는 조금 숨을 돌릴 줄 알게 된 걸까.
멍하게 사요의 옆모습을 바라보다가 사요가 내 쪽으로 고개를 살짝 틀었다.
"그런데 아까부터 계속...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요?"
"응?! 아, 아니야! 아무 것도. 그냥, 사요가 많이 편해졌구나 싶어서."
"...제가요?"
사요는 멋쩍은 듯 손으로 뒷목을 쓸더니 나에게서 시선을 조금 거두었다.
"다행이네요."
그 모습을 보니 조금 웃음이 나왔다. 사요도 부끄러워할 줄 아는구나. 사요는 내 웃음소리에 흠칫하더니 다시 정면을 향해 눈을 돌렸다. 굳게 엉킨 두 팔이 살짝 느슨해지는 게 보였다.
버스는 오래도록 달린다. 어느새 사요와의 대화도 끊기고, 창 밖으로 사람들이 이리저리 얽히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하품이 나왔다. 댄스부 연습 때는 항상 긴장하고 있다가 이렇게 긴장이 풀리면 아무래도 피곤이 몰려온다. 등받이에 등을 깊숙히 기대보았지만 영 자세가 편하지가 않다. 고개를 이리저리 비틀다가 머리가 사요의 어깨에 닿았다.
"피곤하시면 좀 주무세요. 제가 깨워드릴테니."
기댄 채로 올려다 본 사요의 얼굴도 꽤나 피곤해보였다. 궁도부도 퍼포먼스를 내보이는 행사 같은 게 있을까? 궁금해졌지만 피로가 몰려오는 탓에 입이 열리지 않았다. 사요가 내 쪽으로 조금 몸을 기울였다. 나는 그 배려에 맞춰 사요의 어깨에 더 깊숙히 기댔다. 푹신한 침대에 누워있는 것 같이 딱 적당한 편안함. 눈을 감고 꿈나라의 문을 두드리기 위해 숨을 고르고 있을 때, 내 머리에 무언가 묵직한 게 닿았다. 바로 위에서 작은 숨소리가 들린다.
아, 사요는 잘 때 어떤 표정일까. 그러나 피곤함이라는 아이가 계속 내 팔을 잡아 끌었다. 나는 사요를 묻어두고 하릴없이 잠에 빠져들었다.
"...이마이 씨, 일어나보세요."
사요가 급하게 나를 부르며 흔들었다. 힘겹게 눈을 떴다.
"종점까지 와버렸어요. 큰일이에요."
"...종...점.... 종점?!"
황급히 창밖으로 시선을 돌려보니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고, 버스 안에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기사 아저씨는 내리라는 듯이 버스 뒷문을 열어둔 채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이, 일단 유키나한테 연락하자."
"제 휴대폰이 배터리가 모두 나가버려서..."
"아, 그럼 내가..."
휴대폰을 찾으려 주머니를 뒤적거렸지만 휴대폰이 보이지가 않는다. 어, 뭐지? 왜 없지? 가방도 뒤져보고 의자 주변도 살펴보았지만 휴대폰은 사라지고 없었다.
"말도 안돼, 아까 버스 타기 전까지만 해도 분명..."
정적.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건 묵묵히 문을 열어두고 기다리고 있는 버스 기사 아저씨였다. 나는 우선 자리에서 일어나며 사요의 팔을 잡아 끌었다.
"일단 내리자. 내려서 택시를 잡든 다른 버스를 타든 하면 될 거야."
우리가 내리자 버스는 문을 닫고 출발해버렸다. 대체 여기는 어디란 말인가. 사요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주변만 둘러볼 뿐이었다. 허리에 올린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가 있다.
우리가 내린 곳은, 가로수가 울창하고 바로 앞에는 바닷가가 보이는 1차선 도로였다. 자동차는 지나다니지 않는다. 텅 빈 도로. 버스 표지판이라도 보려고 했는데 정류장 표시만 되어있을 뿐 이 곳이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얼굴을 감싸쥐었다. 분명 멤버들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 시간도 꽤 흐른 것 같고... 낭패다.
"이마이 씨, 진정하세요."
사요가 내 어깨 위에 손을 조심스럽게 올렸다. 손을 내리니 사요는 무언가 결심을 한 듯 눈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버스가 온 반대쪽으로 걷다 보면 분명 마을이 나올 거예요."
"...그럴까?"
"만일 잘못된다고 해도 혼자도 아니고 둘이니까 반드시 무슨 수가 생길 거예요."
사요가 듬직하게 말해주니 마음이 놓였다. 그래,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이니 사요가 입에 미소를 살짝 머금었다.
우리는 버스가 온 반대편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해가 지고는 있지만 아까보다 훨씬 더운 느낌이었다. 게다가 등에 기타도 메고 있으니 답답함은 더해갔다. 사요는 걷다가 많이 더웠는지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었다. 시원해보여서 나도 따라 머리를 묶었다. 사요는 머리를 묶는 나를 바라보더니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 내 이마를 닦아주었다. 당황해서 조금 멈칫했지만 더위에 얼굴을 조금 찌푸린 채 내 이마를 닦아주는 사요는, 지금까지는 볼 수 없었던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머리를 다 묶어서도 나는 한동안 사요에게 내 얼굴을 맡겼다.
시원한 바다소리가 철썩이며 더위를 조금씩 식혀주고 있었다. 그러나 등에 멘 기타는 여전히 무거웠다.
"잠깐 쉬었다가 가자."
사요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도로가에 잠시 멈추고 기타를 내려놓았다.
바다에서 흘러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우리 둘 다 멍하게 바다를 바라보았다.
"차라도 지나다니면 실례를 무릅쓰고 조금만 데려다달라고 할 수 있겠는데. 차가 지나다니질 않아."
"이상하네요. 버스가 지나다닐 정도면 근처에 마을이 있다는 뜻인데, 지나다니는 차가 없다니."
목소리가 한층 경직되어있다. 고개를 돌리니 사요가 팔장을 끼며 심각한 표정으로 바다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많이 화가 난 모습이었지만 더위를 먹었는지 어쩐지 그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다.
"이마이 씨는 사람을 관찰하는 걸 좋아하는군요?"
사요가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을 맞췄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힘든 장정이 이어졌던 터라 마음이 메마른 기분이었는데 갑자기 시원한 계곡물이 내 마음을 가득 채워주는 듯이 상쾌해졌다. 사요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아니, 사요는 관찰하기 딱 좋아. 정말 재밌거든. 귀엽고."
"...재밌고 귀엽... 제가 대체 어딜 봐서..."
"사람이 꼭 작고 아기자기해야만 귀여운 게 아니야."
증명이라도 해주고 싶어서 그 볼을 잡아 살짝 늘려주었다. 사요는 여전히 약간 화난 표정으로 볼이 늘어나는 걸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표정을 조금 풀고 내 손을 잡아 내렸다.
"이렇게 심각한 상황에서도 잡담이 원활하다니, 당신이라는 사람은..."
"뭐 어때, 혼자도 아니고 둘인데. 뭐라도 되지 않겠어? 이제 하나도 안 무서운데."
사요가 놀란 듯이 눈을 조금 크게 떴다.
"아, 물론 애들이 걱정하고 있을 테니까 얼른 돌아가야지. 슬슬 움직일까? 길이 이렇게나 긴데, 분명 차 한두대 쯤은 지나갈 거야."
조금 있으면 어두워질 것 같다. 이제부터는 정말 서둘러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처음에 버스에서 내렸을 때만큼 초조하고 무섭지는 않다.
움직이려는데 문득, 내 손이 아직 사요의 손에 잡혀있다는 걸 느꼈다. 손을 놓아야 움직일 텐데. 내 손을 놓을 기미가 없어보이는 사요의 손을 멀뚱멀뚱 내려다보았다.
"이마이 씨."
사요의 손이 내 손을 더 꽉 쥐었다. 아니, 이게 갑자기 무슨 상황이지?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는데, 무언가가 막혀있는 듯이 답답해졌다. 사요의 얼굴을 바라볼 수가 없다.
"이마이 씨, 사실 저는..."
갑자기 용기가 어디선가 불쑥 솟아올라, 나는 사요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사요의 얼굴에서 방금 전까지 돌아갈 방법을 진지하게 모색하던 표정은 사라져 있었다. 사요가 반대쪽 손을 들어올린다. 그 손은 내 머리 위에 안착한다. 부드럽게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는다. 시원한 바람이 더이상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더워졌다.
사요가 천천히 다가온다. 아, 돌아가야 하는데. 곧 밤이 될텐데. 얼른 차를 잡아서 연습실로... 로제리아 멤버들에게 우리의 소식을... 그러나 그런 생각과는 반대로 내 몸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마치 이대로도 괜찮다는 것처럼. 어깨를 빌려주던 모습과 내 땀을 묵묵히 닦아주던 모습, 편하게 느껴져서 다행이라며 머쓱해하는 모습, 나를 살며시 밀어주던 손길까지. 갑자기 오늘 있었던 사요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마치 정말 이대로도 괜찮다는 듯이. 나는 생각을 놓았다.
사요의 이마가 내 이마에 닿았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마이 씨."
"으, 응..."
"영문을 알 수 없는 종점, 갑자기 나타난 바닷가, 그리고 우리 둘...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나는 눈을 살며시 떴다. 지금 사요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이제 일어나세요. 연습실 가야죠."
사요가 다시 나에게서 멀어졌다. 이마의 온기가 사라져간다. 나는 멍하게 사요를 올려다보았다. 사요는 입고리를 살짝 올리며 내 뺨을 쓰다듬었다.
"너무 실망한 표정 짓지 마세요. 이 손은 안 놓을 테니까."
나는 여전히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채로, 사요의 손이 따스하다고 느낄 뿐이었다.
파도 소리가 점점 멀어진다. 사요의 얼굴처럼.
처음에는 파도 소리가 멀어지더니, 소리가 차단되었다. 그러다가 조금씩, 아주 조금씩 소리가 내 귓가로 흘러들어왔다. 사람들이 소근대는 소리. 자동차가 경적을 울리는 소리. 버스의 엔진 소리. 눈을 떴다. 앞 좌석에 앉은 사람이 흔들리고 있었다. 내 몸도 흔들렸다. 그리고, 내가 기대고 있는 사요의 어깨도...
"...아!"
허둥지둥 사요의 어깨에서 고개를 들었다. 여기가 어디지? 주머니를 뒤져서 휴대폰이 잘 있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휴대폰은 무사하다. 이어, 서둘러 바깥을 훑어보니 다행히 바닷가는 아니었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한여름의 답답한 도시다. 아니 그럼, 바닷가면 큰일이지.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정말 터무니없는 꿈이었다.
"이마이 씨...?"
사요가 조금 잠긴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창 밖에서 고개를 돌리니 아니나다를까 사요는 반쯤 감긴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요도 깜빡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곧 내려야할 거야. 준비하자."
그렇게 말하며 기타와 가방을 챙기려는데, 잠시 멈칫했다. 깍지를 낀 채 서로를 꼭 안고 있는 사요와 나의 손. 갑자기 더워지기 시작했다. 사요가 내 시선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내 시선을 쫓다가 입을 열었다.
"아, 이건... 이마이 씨가 안좋은 꿈을 꾸는 것 같길래 안심하라고 잠깐 잡고 있었을 뿐입니다."
사요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내 손을 놓았다. 맞잡고 있었던 손이 뜨겁다. 올 여름은 참 지독하다. 이렇게나 덥다니.
"그런데, 한 정거장 지난 것 같네요."
"뭐?!"
다음 정류장 안내를 들어보니 우리가 내려야 할 정류장은 이미 지나쳐있었다. 잠에서 깬 시점에서도 이미 늦은 상태였다.
"어, 얼른 내려야지!"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다음 정류장까지 아직 좀 가야하니까 진정하세요."
사요는 여전히 잠에서 깨지 않은 비몽사몽한 얼굴로 팔장을 끼고 정면을 주시했다. 이렇게나 착 가라앉은 분위기라니. 사요는 정말 무인도에 떨어져도 침착할 것 같다.
갑자기 그 볼을 한 번 잡아당기고 싶어졌다. 손을 들어 사요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사요가 화들짝 놀라며 몸을 틀어 내 손에서 벗어났다. 잠이 확 깼는지 눈이 말똥말똥해졌다. 역시, 재밌다.
"뭐, 뭐하시는... 이마이 씨?"
"귀여워, 사요."
"....네?"
나는 사요를 향해 씨익 웃어보였다. 아무래도 사요는 아무것도 없는 바닷가에서는 차분해도 내 손 끝에서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나보다. 내가 이긴 기분이다.
"내리자!"
기타와 가방을 챙겨서 먼저 일어나자, 사요도 일어나서 나를 뒤따라왔다.
버스에서 내리자 우리를 태웠던 버스는 다른 사람들을 태우고 멀리 떠난다. 나의 짧고도 이상한 꿈도 함께.
"반대편으로 가서 갈아타죠."
사요와 함께 신호등을 기다리면서 조금씩 꿈을 되새겨보았다. 그 바닷가에서 사요가 정말 나에게 키스라도 했다면... 나는 대체 무슨 정신으로 가만히 있었던 걸까. 아무래도 꿈 속이라 몸이 내 마음대로 안 움직여졌던 것이다. 그래, 그게 맞다.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잖아.
"이마이 씨."
"응?"
사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사요가 내 이마를 짚었다. 손수건의 감촉이 느껴졌다.
"땀 많이 흘리시는데 괜찮으신가요? 이따가 연습실에 가면 물부터 마셔요."
그렇게 말하는 사요의 표정에, 나는 또다시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혹시 이것도 꿈인 걸까. 꿈이라서 내 몸이 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걸까. 햇살이 많이 따가운 듯이 사요는 살짝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꿈 속에서 내 이마를 닦아줄 때처럼.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사요의 휴대폰으로 온 전화였다. 사요는 내 이마에서 손을 거두고 전화를 받았다. 아, 아 네, 미나토 씨. 지금 가고 있습니다. 한 정류장 더 가서 내리는 바람에요. 죄송합니다. 네, 금방 갈게요. 그렇게 정신없이 통화를 하는 사요의 모습에 어쩐지 조금 쓸쓸해졌다.
"이마이 씨, 미나토 씨가 전화를 왜 안 받냐고..."
사요의 손을 꽉 잡았다. 이번에는 생각이 거칠 새도 없이 몸이 먼저 반응했다.
"다음에 바닷가 갈래?"
"네...?"
나는 말없이 웃기만 했다. 사요는 당황해서 내가 손을 잡고 있는 것도 모르는 듯이, 내 얼굴을 뜯어보기 바쁘다. 또 귀엽다고 하면 화내려나. 하고 싶은 말을 꾹 참고 사요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신호등을 주시했다.
"이마이 씨."
"응?"
"자꾸 이렇게 귀엽다는 생각이 들게 하시면 곤란한데요."
방금, 사요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온 것인가... 이해가 되지 않아서 곱씹어보다가 홱 사요를 돌아보았다. 사요는 언제부터 나를, 그런 표정으로 보고 있었던 걸까. 사요의 손가락이 내 손가락 사이를 깊게 파고들었다.
"가죠, 바닷가."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