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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Bang Dream

[히나아야]박하사탕

  정신을 차리고 보니, 파스파레 무대 직전이었다. 엄청나게 큰 공연장에서 공연할 기회를 가진 우리는 하나같이 긴장된 표정으로 저마다의 악기를 꽉 쥐고 있었다. 손에 쥔 마이크가 오늘따라 유난히 크고 무겁게 느껴진다.

 

  "아야, 컨디션 괜찮아?"

 

  치사토가 물었다. 나는 간신히 고개만 끄덕였다. 무대 전날, 그러니까 어제, 우리는 마지막으로 악기를 맞춰보았다. 그러나 내 목 상태가 좋지 않아서 연습이 계속 중단됐다. 이 무대를 좌우하는 것은 아마 나일 것이다.

 

  "나... 나, 잠깐 화장실 좀..."

 

  시간이 없다는 담당자의 말에도 나는 금방 손만 씻고 오겠다며 화장실로 뛰어갔다. 앞으로 공연까지 5분. 차가운 물에 손을 씻어내리니 그나마 울렁거리던 속이 조금 진정되는 것 같았다.

  눈 딱 감고 해내자, 어제의 연습은 잊자. 그렇게 다짐하며 화장실에서 나오는데 누군가와 부딫혔다.

 

  "아, 죄송합니다..."

 

  꾸벅 인사를 하며 그 사람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검은 망토를 쓰고 이상한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바구니 안에는 사탕이 가득했다. 관계자는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들어왔을까.

 

  "많이 고민하고 있는 것 같군요. 사탕 하나 먹을래요?"

 

  수상한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망토가 얼굴의 반을 가리고 있어서 신원은 확인이 불가능했다. 담당자에게 알려야 하나, 잠시 고민하고 있는 사이에 내 손에 어느덧 민트색 사탕이 쥐여졌다.

 

  "고민을 해결해주는 사탕이에요. 기도를 하고 먹으면 분명 좋은 일이 일어날 거예요."

 

  그는 그 말만 남기고는 내 곁을 스쳐 지나가버렸다. 나는 멀뚱하게 서있다가 내 손에 쥐여진 작은 사탕을 내려다보았다. 입 안에서 한번만 굴리면 녹아서 사라질 것 같은 작은 사탕이다. 좋은 일이 일어난다, 라...

 

  "마루야마 씨! 스탠바이!"

 

  담당자가 허겁지겁 뛰어와서 나에게 소리쳤다. 나는 사탕을 까서 입 안에 넣고 씹었다. 화한 느낌이 입 전체에 퍼지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고민. 지금 나의 고민은?

  ...누구보다도 뛰어난 사람이 되고 싶어!

 

  "안녕하세요, 파스파레입니다!"

 

  관객석에는 사람이 가득했다. 꽤 큰 공연장이라고는 하지만 끝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사탕은 이미 입 안에서 사라진 뒤였다. 이젠 눈을 감고 해내는 수밖에 없다.

  음악이 흐르고, 멤버들이 악기를 친다. 나는 마이크를 꽉 쥔다. 입을 열고, 배에 힘을 주고, 소리를 내뱉는다. 그러자 마치 사탕의 효능이 진짜인 것마냥 목소리가 부드럽게 흘러나왔다. 내 손은 자연스럽게 관객석과 호흡을 하고 있었고 관객석에서는 형형색색의 불빛들이 우리를 응원해주고 있었다. 연습 때 문제가 되었던 높은 음도 깔끔하게 해결했다. 우리 파스파레는 순식간에 공연장 전체를 장악했다.

  무대를 만족스럽게 마치고 내려왔다. 멤버들이 모두 잘했다며 나를 안아주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많이 걱정한 눈치였다.

 

  "나, 이제 어떤 일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아!"

 

  자신있게 외치자, 갑자기, 구석에서 가만히 있던 히나가 크게 웃기 시작했다.

 

  "아야, 우리 말은 바르게 해야하지 않을까?"

 

  멤버들의 시선이 전부 히나에게 쏠렸다. 나는 아직 상쾌한 기분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마음속에서 불길함이 샘솟는 것을 느꼈다.

 

  "방금 전의 그 능력은 아야 것이 아니잖아. 빌린 거잖아."

 

  히나가 웃으면서 나에게 다가왔다.

 

  "내 말이 틀려?"

 

.

.

.

.

 

 

  "...맞아."

 

  무릎을 끌어안았다. 눈물이 쉴새없이 흐른다. 꽉 쥐고 있던 이불이 축축해졌다.

  그래, 히나 말이 맞다. 그게 내 능력일 리가 없다. 나에게는 그럴 힘이 없다.

  나는 그저 사탕의 힘을 빌렸을 뿐이었다.

 

  지독한 꿈이네. 혼자 바보같이 피식 웃었다.

 

 

 

 

 

 

 

  연주의 흐름이 끊겼다. 나는 고개를 떨구었다. 오늘따라 목소리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

 

  "아야, 컨디션 안좋아보이는데 괜찮아?"

 

  치사토가 평소와 같이 물었다. 그렇다면 나는 평소대로 괜찮아, 라며 웃어야 할텐데. 웃음도 나지 않는다. 고개를 떨군채로 가만히 있었다.

 

  "요즘 너무 무리하신 거 아님까? 잠깐 쉬는 게 어떻겠슴까?"

 

  마야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오늘 연습은 꽝이다. 나는 대답 대신에 마이크를 놓고 거울 앞에 앉았다. 그것을 신호로 멤버들이 하나둘씩 악기를 놓고 쉬는 시간에 들어갔다.

  아, 오늘따라 연습이 너무 하기 싫다.

 

  "물 마실래?"

 

  나도 모르게 그 목소리에 움찔하면서 어깨를 움츠렸다. 히나가 다가와서 내 옆에 앉더니 물병을 내밀었다. 나는 그 얼굴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저 꿈이었는데. 꿈을 떨칠 힘조차 없는 나는 대체 뭐하는 사람일까.

 

  "아파보여. 열 나?"

 

  히나가 손을 들어 내 이마에 대보려고 했다. 나는 고개를 살짝 틀어 그 손길을 피했다.

 

  "어... 혹시 화났어?"

 

  히나의 얼굴을 보고 있지 않으니 어떤 의도로 말하는지 모르겠다. 물론 얼굴을 보고 있어도 무슨 대답을 해야할지 까마득한 경우가 많았지만. 대답을 미루고 있으니 옆에서 꿀꺽꿀꺽 소리가 들렸다.

 

  "아야는 가끔 이럴 때마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 뭐가 문젤까?"

 

  시작됐다, 그 생각이 들자 억울함이 목에서부터 차올랐다. 무릎을 끌어안고 두 팔에 얼굴을 파묻었다. 울지 마. 울면 안돼. 이게 뭐라고 울어? 그러나 울면 안된다는 생각을 하면 할수록 눈가가 찡해졌다. 결국 눈물이 흘렀다.

 

  "목소리가 잘 안나와? 감기라도 걸린 건가..."

 

  빨리 울음을 그쳐야 한다. 바보같은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다. 나는 눈이 가려운 척을 하면서 무심하게 소매로 눈을 비볐다. 히나는 다행히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아무 말이 없었다. 옆에서 또 물 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음... 사탕 먹을래?"

 

  ...사탕? 갑자기 내 손에 사탕이 쥐여졌다. 히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는데 사탕이 쥐여지자 나도 모르게 고개가 히나 쪽으로 돌아갔다. 히나가 내 눈을 보며 잠시 멍하게 있더니 살짝 웃었다.

 

  "사실 우리 언니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사탕에 마법을 걸면 잘 안풀리는 것도 해결되는 때가 있대."

 

  나는 내가 울고 있었다는 사실도 새까맣게 잊고 히나에게서 눈을 돌리지 못했다. 꿈속에서의 너는, 나를 보며 비웃었다. 그건 너의 능력이 아니야. 사탕의 힘이잖아. 거짓말하지 마. 그런데 지금 너는 나에게 사탕을 주며 마법을 걸어보라고 하고 있다. 이 모순을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이렇게 꼭 쥐고 소원을 빌면 사탕에 마법이 들어갈 거야. 이거 먹고 힘내. 물론, 마법의 사탕을 먹는다고 아야가 갑자기 모든 걸 잘하게 되지는 않겠지만."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래, 그렇게 말해야 히나지. 어쩐지 기분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 히나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사탕을 내려다보았다. 민트색 사탕.

  아, 그런 걸까. 혹시 화장실에서 사탕을 쥐여준 것도, 나에게 모진 소리를 한 것도 전부 너였을까. 나는 사탕을 꼭 쥐고 기도했다.

 

  "이제 슬슬 연습 시작할까요?"

 

  이브가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듯이 밝게 말했다. 나는 기도를 마치고 사탕을 입 속에 넣었다. 화한 느낌이 목을 타고 흘러 몸 전체에 퍼진다. 상쾌한 박하맛이다.

 

  "...그래, 시작하자."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힘차게 일어섰다. 히나도 옆에서 일어나면서 작게 물었다.

 

  "뭐라고 기도했어?"

 

  나는 히나를 돌아보면서 웃었다.

 

  "비~밀."

 

  연습이 다시 시작되었다. 상쾌한 박하사탕 덕분인지 우울하게 시작된 연습은 상쾌하게 끝났다. 기도가 효과가 있었다. 연습을 마치고 모두들 삼삼오오 모여 집으로 향했다. 당장 내일 큰 무대가 있다고 해도 긴장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 정도로, 나는 컨디션을 회복했다.

  정말 단순히 박하사탕을 먹었기 때문이었을까. 그것과는 별개로 나의 기도가 나에게 닿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뭐라고 기도했어? 눈을 밝히며 히나가 물어오던 게 생각났다. 내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였다.

 

  히나를 미워하지 않게 해주세요.

  히나를 좋아하게 해주세요.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