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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드림

[리사/사요]만약에 우리가 사랑하는 사이였다면 제일 먼저 흐름을 끊은 건 유키나였다. 맨 앞에서 우리의 연주를 듣고 가사를 얹는 유키나라면, 또 그만큼 음악에 열정이 있고 예민한 유키나라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 다음으로 유키나만큼 음악에 엄격한 사요가 유키나와 거의 비슷한 타이밍에 연주를 멈췄고, 그 다음으로는 린코가 손을 멈췄고, 마지막으로 드럼 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았는지 뒤늦게 분위기를 알아차린 아코가 스틱을 내렸다. 나는 모두가 연주를 멈춘 다음에야 피크를 내렸다. 베이스의 묵직한 음색이 눈치없이 연습실을 가득 채웠다. 유키나와 사요의 날카로운 시선이 나를 향했다. 린코의 걱정스러운 시선이 그 뒤를 향했고, 왜 그러냐는 듯한 아코의 순진한 눈망울이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웃으면서 모두의 얼굴을 한번씩 훑었다. "아, 미안~ 손이 잠깐 삐.. 더보기
[히나사요리사]충치 "충치가 꽤 깊게 있네요. 이 정도면 아플만 하죠." 드득, 드득, 날카로운 소리가 들릴 때마다 사요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아프진 않지만 꽤나 거슬리는 소리다. 아무래도 좀 더 일찍 치과엘 왔어야 했나. 언제 생겼나 싶었던 검은 자국이 깊게 자리잡을 때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양치를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도 충치가 생기다니. 지금까지 무언갈 게을리 해본 적이 없는 사요에게는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죄책감 같은 것이 가슴께에 덜컥, 걸렸다. 머리 바로 위에서는 하얀 조명이 사요의 입을 훤하게 비추고 있었다. 눈이 부셔서 눈을 감았다. 이런 성격은 아니지만 조금 호들갑을 보태보자면, 청문회라도 온 것 같다. 왜 치아 관리를 게을리 하셨나요? 아픈데도 치과에 가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요? 조명 하나에 의.. 더보기
[사요리사]시작 좋아해요. 한마디에 천천히 유리잔을 내려놓았다. 무슨 용기가 생겼는지 그 눈을 올려다보았다. 사요는 그 한마디만 간단히 내뱉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빨대에 입술을 대고 있었다. 시선은 나에게 닿지 않고 앞에 있는 감자튀김으로 향했다. 평소 같았으면 사요, 감자튀김 정말 많이 좋아하는구나~ 하면서 웃을 타이밍인데. 그렇게 좋아하는 감자튀김을, 사요는 정말 힘겹게 바라보고 있었다. 있는 힘껏 시선을 옮기지 않으려는 것처럼. 발버둥치고 있는 것 같았다. “방금... 뭐라고...?” 믿기지가 않아서 되물었다. 되묻고나서 후회했다. 사요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더니 빨대를 잘근잘근 씹었다. 화...난 걸까. 내가 눈치없이 물어서. 말하기까지 힘들었을텐데. 순간적으로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서 사요에게 상처를.. 더보기
(3) 보금자리를 떠나는 뒷모습 욕실에서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사요는 깊은 시름에 잠겼다. 카타콤을 어떻게 빠져나오긴 했지만 낮과 같은 상황이 조만간 또 찾아올지도 모른다. 사요는 분명 카타콤 쪽에서 사람을 보내 자신을 죽이도록 지시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카타콤은 이 세계에서 지위와 돈이 있는 사람들만 알고 있는 곳이다. 따지고 보면 사람과 마물의 생명으로 도박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명백한 불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카타콤 입장에서는 정보를 흘리고 고발할 가능성이 있는 사요를 잡아들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또한 고발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카타콤에 들이지 않을 만큼 철저하게 검문을 한다. 그 사람의 친구, 친구의 친구, 친구의 가족, 카타콤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전부 그런 관계였다. 결국 카타콤은 고여서 썩은 물로 넘쳐나게 되었다. 단.. 더보기
(2) 숲속의 신관 기억은, 꽤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요는 어디서 태어났는지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다. 태어난 곳도 모르고, 부모님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기억이라는 책의 페이지를 제일 앞으로 돌려보아도 시작은 카타콤이었다. 제일 오래된 기억 중에 하나는, 7살 즈음에 카타콤에서 처음 검을 잡던 날이었다. "자, 저기 있는 아저씨 보이지?" 누군가가 달콤한 목소리로 사요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사요가 고개를 들자, 위에서부터 훤히 내려다보이는 미로가 경기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한 남자가 검과 방패를 들고 벌벌 떨면서 미로를 헤쳐나가고 있었다. 사요가 있는 곳은 관중석이었다. "보여요." "그래, 저 아저씨가 어떻게 싸우는지 보렴." 남자는 막다른 길을 몇번 헤매며 계속 돌아가는 중이었다. 관중들이 남자에게 야유를 보.. 더보기
(1) 현상수배범 사실 달리기는 자신이 없다. 단숨에 허를 찌르는 순간적인 스피드로는 자신이 있었지만, 사요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제일 긴 거리를 달리는 중이었다. 이렇게까지 길게 달려본 적은 없기에 달리면서 몇번 고꾸라질 뻔했지만, 이대로 쓰러지면 앞으로는 없다. 찾아야 할 사람이 있다. 매번 지쳐서 쓰러지려고 할 때마다 기억에 없는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려 애썼다. 이름도 잊어버린지 오래. 분명 밝게 웃고 있는 얼굴이었던 것 같은데. "쏴!" 우거진 나무 틈 사이를 이리저리 움직이다 뒤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줄곧 쫓아오던 군대의 지휘관 목소리다. 사요는 나무들 틈으로 숨는 대신 팔에 차고 있던 방패를 치켜들었다. 사요의 입에서 알아듣기 힘든 언어의 주문이 흘러나오고, 방패는 점점 커지더니 이내 받쳐들고 있을 수.. 더보기
[히나아야]나는 우리가 진심이 되길 바랐다. (下) 왜, 그런 표정을 짓는 거야? "히나, 진심이야?" 언니가 관심을 보여준 건 고마웠지만, 그 표정이 뭘 의미하는지는 의문이었다. 나는 말없이 언니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언니가 다시 묻는다. "마루야마 씨한테 진심이냐고 묻는 거야." 왜, 그런 표정을 짓는 거야? 묻고 싶지만 언니는 대답해주지 않겠지. "진심이 아닐 건 뭐야?" "...네 의지로 무언갈 한다는 건 굉장히 좋은 일이지만... 넌 무언가를 시작할 때 단순한 흥미를 느끼는 게 대부분이잖아." "그게 왜?" "뭐가 문젠지 모르겠어?" 아, 나왔다. 언니의 룽하지 않은 표정. 잔뜩 얼굴을 찌푸린 채 나를 바라보고 있는 표정은 힘이 빠진다. 내가 또 뭘 그렇게 잘못했어? 난 그냥 언니한테 응원을 듣고 싶었을 뿐인데. "좋아, 단도직입.. 더보기
[히나아야]나는 우리가 진심이 되길 바랐다. (上) 히나, 나는 아직도 네가 있던 그 날의 악몽을 꾸고 있어. 파스파레의 수영장 촬영 날에, 준비운동을 하지 않고 깊은 물에 들어갔던 게 화근이었다. 튜브에 올라탄 상태로 화보를 찍고 있었는데, 순간적으로 튜브가 기우뚱하더니 물에 그대로 빠져버렸다. 설상가상으로 다리에 갑자기 힘을 준 탓에 근육이 놀라 쥐가 나기까지. 그 이후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신없이 물을 먹다가, 멤버들 이름을 외쳤다가, 물 밑으로 가라앉았는데 무언가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지상이었다. 물을 너무 많이 먹어서 속도 메슥거리고 어지러운 와중에, 구해준 사람이 나를 바닥에 눕히더니 힘껏 가슴을 압박했다. 숨이 조여오면서 급하게 기침을 하면서 눈을 떴는데, 갑자기 그 얼굴이 내 얼굴 쪽으로.. 더보기
[사요리사]캣닢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사요는 가만히 몸을 소파 위에 뉘인 채로 리사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그 숨결이 바로 코 앞에서 끼쳐온다. 아침, 리사는 로제리아 멤버들에게 줄 쿠키를 새로 만들었다며 사요에게 시식을 부탁했다. 굳이 시식을 해보지 않아도 맛이 보장되어 있는 리사의 쿠키인데, 왜 하필 나에게?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사요는 담담히 알겠다는 대답으로 전화를 끊었다. 학교가 끝나고 부활동이 끝나고 로제리아 연습이 끝날 때까지 리사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로제리아 멤버들과 이전과 다를 바 없이 대화하고 웃었다. 새로 만든 쿠키에 대한 이야기는 비밀일까. 하긴, 멤버들을 깜짝 놀라게 하고 싶은 심정이라면 이해가 간다. 로제리아 연습이 끝나고 리사의 집으로 가기 위해 자연스럽게 유키나.. 더보기
[사요리사]지금도 사요는 마지막까지 친절했다. 내가 먼저 제안해놓고, 그만 사요의 기분을 생각하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려버렸다. 침대 위에 누구랄 것도 없이 스르르 무너져내린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듣기 민망한 신음소리 뒤에 울음소리가 섞이자 사요는 놀라며 내 얼굴을 감싸쥐었다. "이마이 씨?! 죄, 죄송해요... 제가 너무..."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얼굴을 가리고 계속 울기만 했다.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사요랑 참 좋았는데. 사요한테 참 고마웠는데. 사요에게 해주고 싶은 게 많았는데... 그 생각만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우는 것밖엔 할 수 없었다. 그게 나의 전부였다. 그렇다. 내가 사요에게 주었던 것은, 눈물 뿐이었다. 사요는 내가 계속 눈물을 흘리자 곧 그 눈물의 의미를 알아차린 것 같았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