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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유루유리

[히마사쿠]피그말리온 효과-08

*본 팬픽은 기존 캐릭터 설정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하나, 둘, 셋..."

 

히마와리가 손가락을 하나 하나 구부려가면서 미간을 좁혔다.

 

"열, 열하나..."

 

바닥을 보며 무언가를 열심히 세고 있는데 앞에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안녕?"

 

히마와리의 머릿속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주인님 이외에 처음 보는 사람, 경계해야한다.
벌떡 일어나서 상대를 노려보았다. 금발의 장난기 어린 표정의 여학생이 씩씩하게 서있었다.

 

"처음 보는 애인데, 전학 왔어?"

 

뒷짐을 지고 이쪽으로 얼굴을 들이민다.

 

"아... 아닙니다. 저는 사쿠라코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쿠라코? 그게 누구야?"
"제 주인님입니다."
"....응?"

 

여학생의 표정이 오묘하게 일그러졌다가 이내 재미있다는 듯이 활짝 웃는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는데 아직 수업이 끝나려면 조금 기다려야 돼."
"그러는 당신은 이 시간에 왜 복도에 있습니까? 수업에 빠지는 것은 나쁜 일입니다."
"말투가 상당히 무섭네... 내가 왜 이 시간에 복도에 있냐면!"

 

여학생이 두 팔을 쫙 벌렸다.

 

"난 자유로운 몸이니까! 그 누구도 날 제압할 수 없지!"
"...."

 

해석할 수 없는 말이다. 모르는 단어는 없는데 의미를 알 수가 없다. 히마와리가 눈을 끔뻑이면서 열심히 시스템을 돌려보았지만 나오는 것은 한숨 뿐이었다.

 

"바닥에 떨어진 모래알을 세는 중이었구나?"
"그렇습니다."
"심심해보이는데, 우리 학교 옥상에 작은 온실 정원이 있거든? 거기 가면 예쁜 식물들 많아. 구경 갈래?"
"왜... 이렇게 친절한건가요? 처음 보는 사람은 경계해야 합니다."

 

여학생이 히마와리의 손을 덥석 잡았다. 미처 피할 틈도 없었다.

 

"넌 뭔가 재밌는 애 같아서. 난 재밌는 애가 좋거든."

 

 

 

 

 

 

 

 

"차렷, 경례."
"수고하셨습니다~"

 

니시가키가 책을 톡톡 정리하고 교실을 나섰다. 오늘 마지막 수업이었으니 이제부터는 개인 시간이다.
과학실 안은 언제나 어두컴컴하다. 두꺼운 문을 닫으면 바깥의 소리가 완전히 차단된다. 스탠드 빛에만 의존하는 과학실은 왠지 모르게 춥고 쓸쓸해보인다.

 

"분위기를 좀 바꿔야 하나."

 

책을 책상에 대충 던져두고 과학실을 둘러보았다. 먼지가 쌓인 구석 방은 다시 굳게 잠겼다. 히마와리를 만드느라 비밀스럽게 사용했던 공간인데 히마와리가 사라져버렸으니 이제 필요가 없다. 다시 예전처럼 볼품 없는 방이 되었다.
사쿠라코의 반에 들어갈때마다 녀석의 표정이 참 볼만 하다. 뭣 때문에 일을 저질렀는지는 모르겠지만 미리 시험한다고 생각하고 내버려두는 중이다. 안드로이드는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만들어낼수 있다. 어렸을 때 부터 그래왔다. 없어지면 만들고, 없어지면 또 만들었다. 딱히 사라진 것에 대해 미련이 없는 편이었다. 인간 관계도 그렇게 생각했다. 새로운 사람들은 언제든지 많다. 곁을 떠났다고 해서 미련하게 아파할 필요가 없다.

 

[넌 참 기계적이야. 인간 관계도, 네가 만든 물건에 대해서도. 특정한 의미 그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지.]

 

친구들은 따지듯이 충고하고 곁을 떠나갔다. 과학자는 원래 그래. 그렇게 생각하고 어깨를 툭툭 털어버리면 그만이었다. 미련 같은 것은 없다. 요즘 어린 친구들은 관계에 목을 메고 사랑에 굶주려있다. 금방 사라져버릴 약한 마음들이다. 어리석기 그지없다.

 

"사쿠라코는 어떤 마음으로 히마와리를 데려갔으려나."

 

처음 본 사람을 주인으로 인식하도록 해놓았으니 히마와리는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사쿠라코를 지킬 것이다. 다시 돌려받는 것은 불가능할테지.
...아, 딱 한가지 있다.

 

"선생님."

 

도중에 생각이 끊겼다. 뒤를 돌아보니 사랑스러운 작은 제자가 우두커니 서있었다. 과학실의 어둠에 삼켜진 채.

 

"오, 사쿠라코 왔니? 며칠간 안보이더니."
"....."

 

할 말이라도 있는 듯 표정이 어둡다. 작은 몸이 바르르 떨린다. 내가 무섭나? 아니면 저지른 일에 대한 보복이 두려운건가?

 

"잠깐... 시간 되세요?"

 

어린 친구들은 정말 재미있다. 그러지 않을까, 하면 정말 그렇게 한다. 니시가키가 빙긋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사쿠라코는 알아서 의자를 가져와 앉았다. 간만에 과학실에 불이 켜졌다. 니시가키는 가운을 벗어서 의자에 걸쳐두고 냉장고에서 토마토 주스를 꺼냈다. 사쿠라코는 군말 없이 받아들었다. 저번에는 잘 안먹더니 이번에는 단번에 뚜껑을 따서 마셔버린다.
푹, 가죽 의자가 꺼질때까지 몸을 깊숙히 기댄 니시가키가 입을 열었다.

 

"단골 손님이 되었네. 이 과학실이 뭐가 좋다고 자꾸 찾아오는거냐?"
"말씀드릴게 있어요."
"음?"

 

바깥을 흘끔거리던 사쿠라코가 일어나서 머리를 깊숙히 숙였다.

 

"죄송합니다. 히마와리... 지금 제 집에 있어요."

 

역시, 착하구나 사쿠라코.

 

"응, 알고 있어. 잘 보살펴주고 있니?"

사쿠라코가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든다.

"어떻게... 아니 그것보다도, 안혼내시는거예요?"
"나 대신에 잘 맡아주고 있는데 내가 뭐하러? 해코지하려고 데려간건 아닐거 아니야."
"....."

 

니시가키가 조심스레 턱을 괴었다. 사쿠라코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안혼내서가 아니라 말의 의미가 조금 이상하다고 느낀 탓이다. 니시가키의 얼굴은 너무나도 태평했다.

 

"그래서, 어땠니? 역시 내가 만든건 걸작이었지? 밥도 먹을줄 알고 학습 능력도 좋다구."
"....."
"주인 대접 받는 기분도 좋지, 안그래?"

 

사쿠라코는 가슴이 점점 답답해졌다. 고개를 살짝 비틀어도 보고 숨을 깊이 들이마셔도 보았지만 머리를 울리는 알 수 없는 기분은 커져만 갔다.
니시가키는 빙그레 웃었다. 아, 똑같다. 잔소리를 하면서 경멸스럽다는 듯이 날 떠난 친구들의 표정이다. 어린 친구의 얼굴에서 저런 표정을 볼 줄이야. 사쿠라코의 손가락이 꿈틀댄다.

 

"히마와리를 뭐라고 생각하는거예요?"
"뭐라고? 잘 안들려."
"...아니예요."

 

정말 들리지 않아서 순수하게 물어본 것이었다. 원래 목소리가 이렇게 작은 애가 아닌데. 니시가키가 사쿠라코 쪽으로 다가가서 무릎을 살짝 굽혔다. 자고로 이야기가 잘 먹히려면 눈높이를 맞춰줘야 한다.

 

"꼬마 아가씨. 히마와리는 나에게 돌려줘야해."
"돌려달라구요...?"
"그래. 엄연히 말하면 내 물건을 빌려간거잖아? 이제 돌려줘."

 

사쿠라코가 주머니에 손을 넣어 뒤적거렸다. 뭘 하려는거지,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니 코 앞에 돈뭉치가 놓여졌다.

 

"이거... 제가 지난 몇달동안 계속 모아둔 용돈이예요."
"뭐?"

 

피식 웃으니 이젠 아예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게 보인다.

 

"이걸로 히마와리를 달라는거야? 미안한데, 턱없이 부족하겠는걸."

 

받아서 세보니 10만원 정도 된다. 그래도 이정도로는 어림없지. 저걸 연구하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였는...

 

"제 책임감의 값이예요."

 

니시가키의 손 위에 놓여있던 돈 한 장이 살포시 떨어졌다. 앞에 있는 꼬마의 얼굴은 너무나도 당돌했다. 당신이 틀렸어요, 라고 말하는 듯이.

 

"그 무엇도 아니고 제 책임감의 값이라구요."
"...아..."

 

잠시 탄복하던 니시가키가 곧 허리를 곧게 펴고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하하하하! 너 생각보다 재미있는 녀석이구나? 정말 기특해."

 

하얀 가운에 사쿠라코의 책임감이 쌓였다.

 

"이걸 받아뒀으니 나도 네 기대에 부응해줘야겠지? 그러니까 네 말은, 히마와리를 달라는거잖아?"
"아뇨, 달라는게 아니라..."

 

사쿠라코가 머리를 긁적였다. 히마와리를 얻으려고 하는 행동은 아니었다. 단지 '달라고' 한다기에는 뭔가가 많이 부족하다.
니시가키가 계속 고민하고 있는 사쿠라코의 어깨를 두드렸다.

 

"어쨌든. 무슨 뜻인지는 알았으니까, 좋을 대로 해. 내가 워낙 똑똑하게 만들어 놓은 녀석이니까 딱히 신경 쓸 부분은 없을거야."
"저, 정말요?"
"그럼. 또 만들면 되는걸. 히마와리는 습작이었어. 대신 물에 젖게 하면 안돼. 가끔 수건을 물에 적셔서 닦아주는 것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에..."

 

멈칫하는 사쿠라코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그렇다고 너무 상상하지는 말고."
"사, 상상 안했어요!"
"그래, 그래. 이제 나도 할 일을 해야하니까 돌아주겠니?"

 

사쿠라코가 망설이다가 고개를 푹 숙이고 과학실을 나섰다. 니시가키는 문이 완전히 닫길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의자에 기대어 앉았다. 책임감의 값이라. 분명 히마와리의 몸값이라고는 안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슬슬 보이는 것 같다. 내가 쓸데없이 어린 친구의 감성을 건드렸구만.

 

"하지만 사쿠라코, 모든 것에는 끝이 있단다."

 

가늘고 하얀 손가락 위에서 10만원이 넘실거린다. 아직 히마와리를 학계에 보고하지 않았으니 새로 만들어서 다시 보고해야겠다. 시험삼아 배포한 것은 비밀로 해야 새롭게 발명한 것이 되겠지. 그 쪽이 사쿠라코에게도 안전하다.

 

 

 

 


과학실을 나서는 사쿠라코의 발걸음이 느려졌다. 속이 시원할 줄 알았는데 어쩐지 마음만 무거워졌다. 게다가 니시가키가 히마와리에게 미련을 두지 않았다는 것도 찜찜하다. 뭐, 이제는 상관 없는 일이겠지.

 

"히마와리, 기다렸...어라?"

 

복도 모퉁이에서 기다리고 있어야 할 히마와리는 어디론가로 사라지고 없었다. 명령을 어길 애가 아닐텐데?!

 

"히마와리....?"

 

어디에서부터 찾아야 하지? 혹시 길을 잃었나? 나쁜 사람한테 끌려갔나?
때마침 위층에서 학생이 내려온다. 위층이라면 상급생이겠지만 어쩔 수 없다. 붙잡고 물어보는 수 밖에.

 

"저, 저기! 잠깐만요!"

 

학생이 멈춰선다.

 

"음? 무슨 일이야?"
"여기에 서있던 여자애 혹시 못보셨어요? 양갈래 머리에다가 초록색이고..."
"으응~"

 

학생이 갑자기 다가오더니 사쿠라코를 위아래로 내려다보며 턱을 한번 쓸었다. 뭐, 뭐지...?

 

"네가 사쿠라코야?"
"네? 네... 오오무로 사쿠라코예요."
"오호!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예, 옛?!"

 

뭐라고 대답할 겨를도 없이 학생이 사쿠라코의 손을 이끌었다. 복도를 정신없이 질주하는 발걸음을 따라 사쿠라코도 달렸다. 당최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히마와리는 어디로 가고, 이 선배는 또 뭐지?
학생이 사쿠라코의 손을 놓은 것은 복도의 제일 끝, 눈이 잘 닿지 않는 곳에 이르러서였다. 사쿠라코가 무릎 위에 손을 올리며 헉헉댔다.

 

"누, 누구신데..."
"내 이름은 토시노 쿄코. 잘 부탁해."
"...네..."

 

손을 내밀기에 얼떨결에 손을 잡고 흔들었다. 머리 위에 빨간 리본이 묶여져 있었다. 우와, 촌스러...
쿄코는 씩씩하게 미소지었다.

 

"멋진 친구를 데리고 있던데? 히마와리라고?"
"어, 어떻게 아셨어요? 지금 걔 어딨는지 아세요?"
"알다마다. 근데 잠깐 진정 좀 하고. 나 사실 알아버렸거든."

 

쿄코가 사쿠라코에게 얼굴을 바짝 갖다댔다.

 

"히마와리의 깊은 곳까지 알아버렸어..."
"...네?!"
"이야, 나도 처음 봤지 뭐야. 안드로이드는."

 

사쿠라코가 뒤쪽으로 한걸음 물러났다. 아... 안드...

 

"그게 뭐예요...?"

 

사쿠라코가 머리를 긁으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쿄코가 '세상에'하는 표정으로 멍하게 사쿠라코를 건너다보았다.

 

"안드로이드 몰라? 로봇."
"아아, 로봇이요? 로봇... 응?! 로봇이라는걸 알았다고요?!"

 

어떻게 알았지? 그걸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던가?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뭐라고 둘러대야 하지?! 머릿속이 새하얘지면서 다리가 후들후들 떨린다. 영문 없이 등장한 이상한 선배에, 히마와리의 정체까지 들켜버렸다. 최악이야!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았냐면~"
"어이, 쿄코. 여기서 뭐해?"

 

사쿠라코의 등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또다른 상급생이다. 몸을 돌리니 검은 숏컷의 여학생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야~ 유이!"
"너 화장실 간다고 수업 빼먹고 있었지? 얼른 와."
"잠깐만. 하던 얘기 좀 마저 하고."

 

쿄코가 잘됐다는 듯이 유이를 끌고 와서 옆에 세웠다.

 

"내가 어떻게 그걸 알았냐면, 사실 얘는 내가 만든 애거든."
"....네?!"

 

정적이 흘렀다. 사쿠라코가 유이를 천천히 건너다보았다. 이, 이 사람도 안드...머시기라고?

 

"뭐라는거야!"

 

유이가 쿄코에게 꿀밤을 날렸다.

 

"악!"
"너 한번만 더 수업 시간에 도망가면 다음부터 숙제 보여주는 호의는 없을테니까 그렇게 알아. 얼른 와!"
"으아, 잘못했어 유이~"

 

쿄코가 유이에게 사정없이 끌려간다. 정말 이상한 선배다.
멍하게 서있는 사쿠라코에게 쿄코가 마지막으로 목소리를 짜내었다.

 

"아 참, 히마와리는 옥상에 있어! 즐겁게 놀고 있을테니까 한번 가봐!"
"오... 옥상?"

 

발이 바빠졌다. 걘 어쩌자고 옥상까지 올라간거야! 분명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는데.
옥상 문을 열자 더운 공기가 확 끼쳐왔다. 잘못해서 떨어지기라도 했다면 큰일이다.

 

"히마와리! 히마와리!"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숨을 몰아쉬면서 다시 주변을 둘러보니 온실 정원 안에 어렴풋이 실루엣이 보인다.

 

"야!"

 

온실 문을 열고 버럭 소리를 지르자 양갈래 머리가 나풀거리면서 이쪽을 돌아본다.

 

"너, 왜 여깄어!"
"사쿠라코?"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내가 복도에서 기다리라고 했..."
"잠깐만 멈춰주세요!"

 

사쿠라코가 멈칫했다.

 

"뭐... 뭐야? 방금 나한테 명령한거야?"
"죄, 죄송해요. 하지만... 사쿠라코가 지금 오면 날아가버리고 말아요."
"뭐가?"

 

히마와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손가락 끝에 무언가가 앉아있다.

 

"...나비?"
"한마리가 날아들어왔어요. 예쁘죠?"
"징그럽지 않아?"

 

사쿠라코는 그러면서 쭈뼛쭈뼛 히마와리 곁으로 다가갔다. 자세히 보니 나비도 꽤 귀엽게 생겼다. 작은 날개가 마치 빳빳하게 펴진 종이같다.

 

"정말 예뻐요. 나비는 처음 보는데."
"응. 그렇네. 난 처음 보는건 아니지만."

 

고개를 살짝 돌리니 히마와리는 나비 관찰에 흠뻑 젖어있었다. 시선도 느껴지지 않는건지 열심히 보면서 함박 웃음을 짓고 있다. 늘 짓던 미소와는 다른 느낌이다. 히마와리는 지금 어떤 기분일까.

 

"가슴 안쪽이 간질거려요."

 

히마와리가 사쿠라코의 생각에 대답하듯이 속삭였다.

 

"간질거려?"
"모르겠어요. 이쪽이 막... 간지러워서 웃음이 나요."

 

정말 감정이 풍부하구나. 정작 인간인 사쿠라코는 그게 무슨 기분인지 상상이 잘 되지 않았다. 그저 방긋 웃고 있는 히마와리의 표정만 멍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너, 이가 하얘."
"...네?"

 

나비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던 히마와리가 문득 고개를 돌려 사쿠라코와 눈을 마주쳤다. 순간 어디에선가 바람이 불어와서 나비를 낚아채갔다. 그걸 모르는 히마와리의 손은 허공에 그대로 머물렀다.
잠시 시간이 멈춘 듯, 주위가 고요해졌다. 사쿠라코의 시야가 좁아지면서 히마와리의 눈동자에 비춰진 자신의 얼굴이 보였다.

 

"도, 돌아가자."

 

사쿠라코가 먼저 발길을 돌렸다. 히마와리는 사쿠라코의 등을 한번 보고는 그제서야 손가락에서 나비가 떠나갔음을 알고 입을 삐죽였다.

 

"언제 다시 와요."
"옥상까지 올라오기 힘들어."

 

히마와리가 부지런히 사쿠라코를 따라잡았다.

 

"아 그리고 아까 명령 어겨서 죄송해요. 어떤 분이 여기에 재밌는게 많다고 끌고 오셔서..."
"그 누구도 함부로 따라가지 마. 위험하단 말이야."
"네, 명심할게요."

 

사쿠라코가 깊이 숨을 들이마시면서 왼쪽 가슴에 손을 댔다. 하얀 이를 보는 순간 무언가가 꿈틀댔었다. 이게 간지럽다는 느낌인가?
연거푸 숨을 들이마시고 들이쉬는 사쿠라코를 보면서 히마와리가 미소지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해요."
"걱정은 무슨. 그냥 친구로써."

 

아. 사쿠라코는 순간 깨달았다. 혹시 몰라서 모아둔 용돈까지 챙겨들고 니시가키를 찾아간 것은 히마와리를 달라고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히마와리를 로봇이 아닌 친구로 남게 해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