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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유루유리

[히마사쿠]구운몽 너는, 갑자기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 펜을 떨어뜨렸다. 고개를 돌리니 졸린 듯이 눈을 희미하게 뜬 네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을 바라보고 있자니 묘한 마음이 울렁거렸다. 네 손이 이번에는 내 뺨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작게 속삭였다. "언제까지 숙제만 할거예요?" 나는 침을 꿀꺽 삼키듯이, 긴장된 눈을 떴다. 천장이 얄궂게 웃고 있었다.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얼굴을 쓸어내렸다. 무언가의 저주일까. 내가 무슨 죄라도 지었나. 언제부턴가, 나는 이런 꿈을 자주 꾼다. "사쿠라코, 언제까지 가방만 쌀거예요?" 기다리다가 결국 폭발한 네가 나에게 성을 낸다. 나는 멍하게 너를 바라본다. 그러게. 나는 매일매일, 세상이 한발자국씩 느려지는 기분이다. "그렇게 바보같은 표정 짓지 .. 더보기
[히마사쿠]어째서, 그토록 분명 학교 끝나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았죠. 어쩌면 다 저의 고집이었을지도 몰라요. 그러나 집으로 함께 돌아갈 때, 열이 나는 것 같다고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저에게 사쿠라코는 아무렇지도 않게 "히마와리도 은근 꾀병이 잦다니까."라고 했지요. 봄바람이 사정없이 제 마음을 데워놓는 기분이었어요. 그래서 물었죠. 대체 제가 언제 꾀병을 부렸냐고. 사쿠라코는 그걸 또 들었냐는 표정으로, 어제 피구 할때 사쿠라코가 던진 공에 맞아 넘어졌을 때 이야기를 꺼냈어요. 사정없는 공에 직격으로 맞아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졌는데 주변에 친구들이 웅성웅성 몰려드니까 사쿠라코가 심술궂게 한 말은, "별로 세게 치지도 않았는데 엄살이야."라고 했던가요. 너무 정신없어서 기억이 잘 안나네요. 그땐 정말 아팠다고 호소하.. 더보기
[히마사쿠]TIME! 나에게 조금이라도 평범하게 대할수는 없는건가요. 어쩐지 평소의 우리를 생각하고 있자면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굳이 3인자의 입장에서 보지 않아도 그랬다. 팔짱을 끼거나 손을 잡거나 장난을 치거나 다정하게 휴대폰을 보며 웃거나... 또래의 여자 아이들에 비해 우리는 유독 낯을 가렸다. 왜 그럴까. 소꿉친구가 아니었던가. 멍청한 사쿠라코는 그런 생각을 한번쯤이나 해봤을까. 나는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른 채 주먹을 꽉 쥐고 어쩌면 사쿠라코에게는 의미없는 메아리를 외치고 있었다. "대체 사쿠라코한테 저는 뭔가요?" "아카리~" 하교시간, 하교할 채비를 하고 있는데 사쿠라코가 갑자기 아카리를 정답게 불렀다. 뒤이어 당황한 듯한 아카리의 목소리, 장난스러운 사쿠라코의 웃음소리. 나는 유독 피곤.. 더보기
[쿄아야]너의 이름은 살을 에는 추위에 코트를 꽉 여맸다. 대충 패딩이나 입고 나갈까, 했는데 엄마의 성화에 못이겨 꾸민답시고 입었지만 화장도 옷도 전부 내것이 아니었다. 길거리에 나 혼자 동떨어져있는것 같은 무안함, 서글픔이 몰려왔다. 한숨마저도 공기가 차서 차마 떨어지지 않는, 나는 어느새 카페 앞에 도착해있었다. 카페에서 혼자 있는 사람은 드물다. 혼자인걸까 싶은 사람들도 조금 기다리다보면 상대가 찾아와 반갑게 인사한다. 나는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쓴걸 별로 좋아하지도 잘 먹지도 않지만 제일 맛없는걸 시키면 쓰다는 생각으로 가득 찬 머리 덕에 자리에 제법 오래 버티고 있을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삼삼오오 모여 누군가와 동행한다. 여자친구 혹은 남자친구, .. 더보기
[히마사쿠]사쿠라코 Zi존 프로젝트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오늘 하루도 끝이 났다. 우리는 자리를 정리하고 하나 둘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학생회 일은 생각보다 고달프다. 매일같이 운동장이 노란 빛으로 물들때까지 학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오늘은 우리 먼저 가볼게, 조심히 가!" 스기우라 선배는 가족들과 저녁 약속이 있다며 먼저 나갔고 이케다 선배도 늘 그랬듯 함께였다. 나와 히마와리, 마츠모토 학생회장님만 남은줄 알았는데 학생회장님은 어느샌가 자리를 비우고 안계셨다. 역시, 엄청난 존재감이다. 누구랑 캐릭터가 겹치는것도 같은데. "저 사쿠라코, 저 잠시만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빨리 다녀와, 배고프니까." 일이 유독 많았던 터라 나는 지쳐있었다. 히마와리가 가방을 놔두고 총총 복도 끝으로 사라지는 동안 나는 히마와리의 가방까지 들고 .. 더보기
[히마사쿠]마법적 감각 사쿠라코는 맹세코 그럴 속셈이 없었다. 아무리 히마와리가 밉다지만... "빨리 뛰어!! 지각하게 생겼잖아!" 히마와리가 알람을 못듣고 제 시간에 일어나지 않는 바람에 두 사람은 열심히 질주하고 있었다. 1교시 시작까지 남은 시간은 10분. 아침마다 가슴에 피가 몰려 머리가 맑아지지 못하는게 틀림없어, 바보 히마와리 가슴 마인! 사쿠라코는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다음부터는 늦을것 같으면 기다려주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육교로 올라가, 거리 위를 지나, 밑으로 내려가는 계단이었다. 사쿠라코는 두 계단 세 계단씩 훌쩍훌쩍 넘어가 다시 평지를 달리는데 히마와리가 기어가는 목소리를 냈다. "사, 사쿠라코, 그러다가 넘어져요..." 헉헉대면서 따라오는 히마와리에게, 기다려주느라 덩달아 지각 위기에 놓인 사쿠라코는 고개.. 더보기
[히마사쿠]안귀여워요/안멋져요 「안귀여워요」 "사쿠라코, 고등학생이랑 사귀면 어때?" 쿄코가 누워서 만화책을 넘기며 물었다. 사쿠라코는 바닥에 앉아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면서 웅얼거렸다. "어떻긴요... 그냥 사람이랑 사귀는거죠." "그래도 막 귀엽다던가 그렇지 않아?" "엑." 사쿠라코의 얼굴이 굳어졌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쿄코를 쳐다보았다. 사쿠라코는 그 말을 도저히 이해할수 없다. "선배... 그거 진심으로 하는 말이에요?" "음?" "귀엽긴요! 하~나도 안귀여워요!" 홧김에 던진 휴대폰이 침대 위로 다이빙했다. 쿄코가 가볍게 휴대폰을 피하고 만화책을 덮었다. "안귀여워?" "괴팍하고, 고지식하기 그지없고, 툭 하면 때리고, 째려보고, 나가 죽으라는 말이나 하고, 버릇이 없어요!" "5살이나 차이나는데?" "어른을 신발에 붙은 .. 더보기
[꽁트]가지 않는다, 갈수가 없다 왜 불렀어, 퉁명스럽게 묻는데 히마와리는 한동안 대꾸하지 않고 뒷짐을 지고 나를 등지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길게 하는지 해가 꽤 긴 그림자를 그리는 동안 우리는 말이 없었다. 그냥 돌아갈까. 발걸음을 돌리려는데 히마와리의 발 끝이 내 그림자를 살포시 밟았다. 마치 정말 붙잡힌 듯이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냥, 사쿠라코는 이대로 있어줬으면 해서요." 혹시 내가 또 뭘 잘못했나. 머릿속으로 하루동안 있었던 일들이 스쳐지나갔다. "어디 가지 말고, 딱 이 거리에서." 어느새 히마와리는 내 소매를 붙잡고 있었다. 이제 정말 붙잡혔다.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있어요.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뭘, 왜 이러는지 묻고 싶었다. 슬픈것 같기도 하고 아무렇지도 않아보이기도 한 저 오묘한 표정으로 대체 무슨.. 더보기
[히마사쿠]어디에서 내리세요? 나는 사자를 때려잡고 있었다. 멀리서 활을 겨냥해서 쏘아 사자를 넘어뜨렸다. 그러나 동물의 왕 사자는 그냥 넘어지는 법이 없다. 곧바로 일어나 송곳니를 드러내며 나를 덮쳐왔다. 나는 재빨리 품 안에서 칼을 꺼내 사자의 가슴 깊이 푹 찔렀다. 그리고 순간. "저기요, 어디서 내리세요?" 사자가 상냥한 목소리를 냈다. 놀라서 내 몸 위로 힘없이 엎어지는 사자를 밀쳐냈다. 고개를 홱 뒤로 젖힌 사자는 다시 말했다. "어디서 내리시냐구요." 어디서, 뭘 내린단 말인가? 시야가 조금씩 흐려졌다. 눈을 비볐다. 천천히 눈을 다시 뜨니, 내 앞에 터질것 같은 복숭아가 하얀 봉투에 담겨져있는게 보였다. 아니, 실례. 눈을 들어보니 가슴이었다. 사자를 밀쳐내듯이 뒤로 확 물러났다. 덜컹덜컹 지하철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 더보기
[쿄치나]톱니바퀴를 맞물리는 방법 선배는 앞서 두번 거절했다. 늘 당차고 낭랑했던 태도는 어디로 가고 머리를 긁적이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였다. 그 모습이 낮설었는지, 아니면 마음 깊숙히 숨어있는 양심이라는 것이 꿈틀댔던 탓인지, 나 역시 선배의 눈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하지만 맹세코 예전같은 마음은 아니었다. 무언가를 이용해보려고 했다거나 장난이라던가... 추호도 없었다. 진지하게 말을 꺼내는 동안에 내 머릿 속에는 온통 지난날의 쿄코 선배 뿐이었다. 어느날 보았다. 함께 걷다가 내가 눈을 떼지 못하는 물건을 등 뒤에서 건넸을때. 내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덩달아 싱긋 미소를 짓던 때. 내가 쫓던 것 보다 훨씬 가치가 있는 보물을 놓치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는 조용히 날 보며 웃고 있었다. 건물 건너편 유리에 비춰진 선배의 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