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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유루유리

[히마사쿠]잊혀지지 않는 아이

"히마와리, 히마와리!! 히마와리는 왜 히마와리(해바라기)야?"

서류를 정리하다가 문득 사쿠라코가 히마와리를 돌아보았다. 히마와리는 사쿠라코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럼 사쿠라코는 왜 사쿠라코(벚꽃 아이)인가요?"
"에에, 뭐야! 내가 먼저 물었잖아?"
"일하고 있는 와중에 대답할 의무는 없어요."
"서류 정리 재미 없단 말이야~~~~!! 스기우라 선배랑 이케다 선배는 왜 이럴때 안 계셔!!"

지금까지 가만히 있었던 것만으로도 용하다. 히마와리는 이맛살을 찌푸렸지만 동요하지 않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일을 재미있어서 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아직 어리네요, 사쿠라코는. 그러니까 만년 사쿠라'코'인거예요."
"뭐야?! 이 가슴 마녀야!"
"...그런 말로 성질 돋워봤자 소용 없어요. 오늘은 일이 많잖아요. "

살짝 움찔한것 같은데. 사쿠라코는 미세하게 몸을 떨고 있는 히마와리를 향해 코웃음을 날렸다. 사람들은 알까, 히마와리는 겉으로는 우아하고 차분해보이지만 속은 괴팍하기 그지 없다는걸. '가슴 마녀'라는 말 한마디로 본성을 깨울수 있는건 나, 사쿠라코 밖에 없단 말이지.
속으로 낄낄대던 사쿠라코가 문득 고개를 돌리자, 창 밖에서 벚꽃잎이 바람 따라 떨어지는 풍경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순간 사쿠라코의 눈빛이 일렁였다. 봄도 이제 끝나가고 있다.

"사쿠라(벚꽃)는 바보야."
"네, 사쿠라코는 바보예요. 이제 알았나요?"

사쿠라코가 중얼거리는 말에 히마와리가 별 생각 없이 장난스럽게 받아쳤다. 곧 사쿠라코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울리겠지, 어떻게 받아줄까 고민하던 히마와리는 왠일로 바깥을 내려다보며 잠잠한 사쿠라코의 모습에 그제야 일에서 눈길을 거두었다.

"금방 질거면 왜 태어나?"
"...사쿠라코?"
"난 왜 사쿠라코일까? 무슨 뜻으로 지었을까? 차라리 히마와리(해바라기) 였으면 좋았을텐데. 일찍 지지도 않고."

정적이 흘렀다. 히마와리는 멍하게 사쿠라코의 옆모습을 바라보다가 살며시 미소지었다. 사쿠라코는 가끔 손 쓸 틈도 없이 어려진다.

"그렇지 않아요. 해바라기도 언젠가는 지기 마련이죠."
"저녁에만 지는거잖아. 몇년이고 몇십년이고 그 자리일수 있잖아."
"해바라기는 여름에 딱 한달만 피니까 결국 사쿠라처럼 한철의 꽃에 지나지 않아요. 무엇이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이잖아요? 너무 상심하지 말아요."
"체, 그게 뭐야. 어른인 척 하지 마. 가슴 마녀 주제에."

히마와리의 손이 움찔거렸다. 달래주려고 했더니 또 태클이다. 하여튼 잠자코 들어주는 꼴을 못봤다니까요.
히마와리가 명쾌한 답을 내놓은건 아닌지 사쿠라코의 표정은 여전히 심난해보였다. 무슨 말을 해줘야 좋을까. 사쿠라코는 가끔 손 쓸 틈도 없이 까다로워진다.

"음... 한철이라는건 굉장히 아쉬운거지만, 딱 한철 뿐이기에 특별하다는 의미도 있지 않을까요?"
"...특별해?"

드디어 이야기가 먹혔다. 사쿠라코가 히마와리를 돌아보자 히마와리는 해바라기처럼 활짝 웃고 있었다.

"계속 이어지는건 어쩌면 좋지 않은 일일수도 있어요. 곁에 계속 있으면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순간이 오고, 그 존재를 잊어버리게 되니까요. 하지만 사쿠라는 사람들이 매년 축제를 열잖아요? 가끔이기에 잊혀지지 않고 오히려 꼭 기억되는 거예요."
"히마와리..."
"저는 사쿠라코가 부러운걸요? 사쿠라처럼 특별하고 잊혀지지 않는 아이."

사쿠라코가 눈길을 살짝 떨어뜨렸다가 이내 상쾌한 표정으로 방긋 웃었다.

"그렇지, 사쿠라코는 특별한 아이야!"

간신히 돌아왔네요. 히마와리가 안심하고 다시 서류를 잡으려는 순간, 별안간 낮간지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마워, 히마와리."

아직 여름도 오지 않았는데 갑자기 덥고 갑갑해졌다. 히마와리는 시선을 피하며 서류들을 가지런히 정리해서 탕탕 내리쳤다.

"사쿠라코가 워낙 바보같은 소리만 늘어놓으니까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잖아요! 앞으론 잡담 금지예요!"
"아, 왜에!!! 히마와리도 같이 얘기해놓고서는!"
"자꾸 그러면 진짜 사쿠라처럼 지게 해버릴거예요!"
"히마와리 바보!!! 가슴 괴물!! 몸무게 절반이 가슴 무게지?!"

가만히 듣고있던 히마와리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네, 제발 제 가슴 반만 가져가주세요! 저도 없는 사람에게 기부 좀 하고 싶네요!"
"말 다했어?!?! 가슴 금지야!!!"

그때, 학생회실 문이 열리고 아야노와 치토세가 들어왔다. 언성을 높이고 있던 사쿠라코와 히마와리는 행동을 멈추고 동시에 코피를 흘리고 있는 치토세를 돌아보았다.

"...미안, 엿듣고 있었어..."

아야노가 멋쩍게 웃었다. 더 있다간 얘가 과다 출혈로 죽을것 같아서 말이야....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