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해요. 한마디에 천천히 유리잔을 내려놓았다. 무슨 용기가 생겼는지 그 눈을 올려다보았다. 사요는 그 한마디만 간단히 내뱉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빨대에 입술을 대고 있었다. 시선은 나에게 닿지 않고 앞에 있는 감자튀김으로 향했다. 평소 같았으면 사요, 감자튀김 정말 많이 좋아하는구나~ 하면서 웃을 타이밍인데. 그렇게 좋아하는 감자튀김을, 사요는 정말 힘겹게 바라보고 있었다. 있는 힘껏 시선을 옮기지 않으려는 것처럼. 발버둥치고 있는 것 같았다.
“방금... 뭐라고...?”
믿기지가 않아서 되물었다. 되묻고나서 후회했다. 사요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더니 빨대를 잘근잘근 씹었다. 화...난 걸까. 내가 눈치없이 물어서. 말하기까지 힘들었을텐데. 순간적으로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서 사요에게 상처를 줬을까. 대답할 필요 없다는 뜻으로, 급하게 말을 이었다.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사요는 여전히 시선을 바닥에 둔 채로 고민하는 듯 했다. 연습이 잘 되지 않았을 때의 표정과 똑같다. 이래서는 고백을 들은 게 아니라, 잔소리를 듣는 기분이다.
“...네.”
대답이 나오기까지 1년이 걸린 듯 하다. 깊이 한숨을 쉬었다. 한 고비 넘겼다.
“언제부터?”
사요는 다시 고민하다가 살짝 내 얼굴을 바라보고는 다시 시선을 내렸다.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궁금했을까.
“기억이 안 나네요.”
사요가 다시 빨대에 입을 댔다. 빨대 안의 숨이 음료의 바닥까지 빨아삼킬 듯이 세찬 소리를 냈다. 쪼로록. 그 소리를 신호로 음료수 잔이 사요의 손을 빠져나갔다. 식사는 끝이 났다. 그리고 이제 내가 대답을 해야 할 차례겠지. 그런데,
“가죠. 늦었으니까.”
사요는 일어나고 있었다. 내 대답은? 급하게 사요의 팔을 잡았다. 사요가 놀랐는지 황급하게 손을 빼면서 나를 내려다보았다. 못 만질 것이라도 만진 것 마냥. 무언가 두려워보였다.
“와, 드디어 얼굴 제대로 보네.”
웃으면서 사요를 안심시키려 했다. 내 마음이 통했는지 사요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잠시 숨을 골랐다. 머릿속으로 레스토랑에서 사람들이 피우는 소란이 어지럽다. 다시 사요에게 집중했다.
“내 대답, 듣고 싶지 않은 거야?”
“...안 들어도 됩니다.”
“왜?”
“말이라는 건 으레 그런 거니까요. 한 귀로 흘러들어와 다시 한 귀로 빠져나가죠. 흐르는 물처럼.”
듣기만 해도, 흘러가는 물을 바라볼 때처럼 아무 생각이 없어질 것만 같다. 사요는 머뭇거리더니 그 말 다음에 한마디를 더 붙였다. 좋아한다는 말도 예외는 없습니다, 라고.
마음에 담아두지 말라는 뜻일까. 사요도 참, 이럴 때는 이기적이다. 사요는 이제 내 시선을 피하지 않고 있었다. 지금 사요가 듣고 싶은 말은, 나도 사실 사요 좋아해, 일까. 그렇게 대답하고 싶지만 아직 나로서는 그 대답이 그렇게 상쾌하지는 않다. 사요를 좋아하지만, 친구로서 좋아하는 것이니까. 아직 그 이상의 깊은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그러니까.
“노력해볼게. 나도 사요 좋아할 수 있도록.”
이 이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내가 해야 할 일일 테다. 사요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사요의 두 손이 서로를 꽉 붙잡았다. 오한이라도 오는 듯이 어깨는 움츠러들고, 시선은 다시 아래로, 아래로 향하다 못해 고개가 푹 밑으로 꺾인다.
“왜... 왜....?”
떨리는 목소리. 사요의 얼굴을 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당최 표정이 보이질 않았다.
“왜... 그런 대답을... 이마이 씨는, 제가 좋나요? 저의 어디가...”
고백한 사람의 태도가 아닌데. 그래, 우리는 소설책이나 영화의 주인공이 아니니까. 가끔은 이런 시나리오가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다. 한숨이 절로 흘러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많이 슬퍼보이는 그 모습이 심장을 무겁게 죄여오는 기분이었다. 이럴 땐, 나라도 기운을 내야 한다.
“사요가 싫지는 않으니까~ 오히려 좋은 쪽이고.”
“그런 이유로...?”
“응. 그런 이유로.”
“후회할 거예요.”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할래. 중요한 건...”
사요의 얼굴을 감싸 들어올렸다. 테이블 사이가 꽤 좁아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한 손으로는 여전히 사요의 얼굴을 받친 채로, 다른 손으로는 냅킨을 뽑아 사요의 눈 주변을 닦았다. 무슨 감정이 섞였을지 모를 물이 냅킨을 흥건히 적셔갔다.
“중요한 건, 사요가 나를 좋아한다는 거잖아?”
사요가 다시 얼굴을 찌푸렸다. 어느새 뜨거워진 두 손이 내 손을 꽉 잡았다. 아니, 사요의 손은 원래부터 뜨거웠을지도 모른다. 잡아본 적이 없으니까 나는 모른다. 더군다나 이런 감정으로는...
“몰라줘서 미안해. 많이 힘들었지?”
그 말에 사요가 별안간 찌푸렸던 인상을 조금 펴고 어깨가 조금 흔들릴 정도로 웃었다. 내 손을 뜨겁게 잡고 있던 손에 힘이 조금 풀렸다.
“당신은 정말, 터무니없이 상냥하네요.”
내 손이 사요의 입술에 닿았다. 사요는 한동안 내 손을 붙잡고 그렇게, 꿈을 꾸는 듯이 눈을 감았다. 사요의 숨결에 내 숨을 맞춰보았다. 들이쉬었다가 내쉬고. 다시 들이쉬었다가 내쉰다. 이제 모든 것들이 특별해질 거라고, 폐에 가득 찬 공기가 내 속을 간질였다. 나도 웃으며 눈을 감았다. 이런 느낌이구나.
늘 가던 레스토랑도 어느새 특별한 공간이 되었다. 시끄러운 사람들 소리도, 손에 닿는 사요의 숨결에 조용히 묻혔다. 그게 시작이었다. 우리의 특별함은.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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