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사요는 가만히 몸을 소파 위에 뉘인 채로 리사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그 숨결이 바로 코 앞에서 끼쳐온다.
아침, 리사는 로제리아 멤버들에게 줄 쿠키를 새로 만들었다며 사요에게 시식을 부탁했다. 굳이 시식을 해보지 않아도 맛이 보장되어 있는 리사의 쿠키인데, 왜 하필 나에게?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사요는 담담히 알겠다는 대답으로 전화를 끊었다. 학교가 끝나고 부활동이 끝나고 로제리아 연습이 끝날 때까지 리사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로제리아 멤버들과 이전과 다를 바 없이 대화하고 웃었다. 새로 만든 쿠키에 대한 이야기는 비밀일까. 하긴, 멤버들을 깜짝 놀라게 하고 싶은 심정이라면 이해가 간다.
로제리아 연습이 끝나고 리사의 집으로 가기 위해 자연스럽게 유키나와도 합류하게 되었다. 유키나는 리사 너머 사요를 흘끔 쳐다보았다.
"사요가 이 시간에 같은 방향으로 집에 가다니, 새롭네."
뭐라 대답해야 할까. 아직 리사의 집에 간다고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오늘 하루 리사의 행동을 떠올려, 사요는 암묵적인 룰을 지키기로 했다.
"근처에 일이 있어서요."
"이 근처까지 무슨 일이...?"
"그냥... 심부름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유키나의 눈치를 살피려는데, 가운데에 있던 리사가 사요 쪽으로 고개를 살짝 틀고 무언가가 웃겨 죽겠다는 듯이 장난스럽게 키득대는 게 보였다. 사요는 잠시 멀뚱, 뭘 잘못했나 생각해보았지만 리사가 왜 웃는지 알 수 없었다. 리사는 유키나가 알아채기 전에 다시 평화로운 표정으로 돌아왔다.
리사와 유키나의 집 근처까지 왔을 때, 리사의 집에 들어가야 하는 걸 어떻게 둘러대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사요의 팔을 리사가 붙잡았다.
"아, 유키나, 먼저 들어가. 난 사요 다시 데려다주고 들어갈게. 이 근처는 사요한테 좀 생소하잖아?"
"...무슨 일이 있는지도 모르는데 기다렸다가 데려다준다는 거야?"
유키나는 놀란 표정이었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둘 다 내일 연습 때 보자."
"...조심히 들어가세요, 미나토 씨."
집이 바로 코앞인데 조심할 게 뭐가 있겠냐만, 사요는 일단 대충 얼버무렸다. 유키나가 집으로 들어가고 리사와 둘만 남아있게 되어서야 불편했던 마음이 진정됐다.
리사가 빙긋 웃었다.
"뭐야, 아깐 왜 사실대로 말 안 했어?"
"네? 무슨..."
"그냥 우리 집에 쿠키 먹으러 간다고 하면 되잖아."
사요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리사를 바라보았다. 심부름이 있다는 말에 리사가 키득대던 모습이 떠올랐다. 난 오늘 바보였군.
"하루종일 쿠키 이야기를 안 하길래 멤버들한테는 비밀인 줄 알았는데요."
"딱히 비밀이랄 건 없지만... 뭐, 사요가 그렇게 이야기해주니까 편한 건 있었어."
리사가 문 앞까지 걸어가서 사요한테 손짓했다.
"어서 들어와. 곧 있으면 저녁 시간이니까 돌아가야 하잖아."
"...네."
대체 일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사요는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리사의 집에 들어갔다. 아직 부모님은 안 오신 듯 하다. 텅 빈 집의 커다란 베란다 창문으로 노을이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사요는 리사의 안내에 따라 거실의 소파에 앉았다. 소파 앞의 작은 탁자에 쿠키와 주스가 놓여졌다.
"먹어봐. 내일 멤버들한테 줄 거거든."
"잘 먹겠습니다."
리사에게 끔뻑 눈인사를 하고, 사요는 쿠키를 입에 가져다 넣었다. 평범한 맛인데.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주스를 한 모금 마시자, 리사가 사요의 옆에 앉았다.
"왜 그래? 맛 없어?"
"아뇨... 맛있습니다. 평소의 이마이 씨의 솜씨예요."
"근데 표정이 왜 그래?"
"특별한 맛이 느껴지지 않아서... 왜 굳이 저에게 시식을 부탁하셨나요?"
리사가 턱을 쓸어내렸다.
"흐음~ 그냥, 사요가 쿠키 먹는 모습이 보고 싶어서."
"...네?"
"안돼?"
사요는 왠지 숨이 막혀서 리사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그대로 다시 접시에 손을 대려는 순간, 리사가 손을 들어 사요의 입가를 훔쳐냈다.
"아이 같이 묻히고 먹네."
이마이 씨, 하고 부르려고 하자 몸이 눕혀졌다. 등 뒤로 푹신한 소파의 감촉이, 앞으로는 리사의 숨결이 끼쳤다. 리사는 웃고 있었다. 쿠키 맛 만큼이나 평범한, 평소에 짓는 미소. 일어나야 해. 속으로 외쳤지만 사요는 움직일 수 없었다. 그대로 어딘가 고장난 것처럼, 천천히 팔을 들어 리사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그러자 리사도 사요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훨씬 활짝 웃는 얼굴로.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사요는 스스로 답을 내리는 것을 포기했다. 리사가 더 다가오더니 사요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입술이 떨어지려는 찰나 사요가 다시 리사의 얼굴을 붙잡았다. 심장이 입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벌컥대고 있었다. 사요는 다른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이미 생각이란 건 평소에도 넘쳐난다. 이 순간 만큼은...
"혹시 쿠키에 이상한 걸 탄 건..."
"에, 나 그렇게 치사한 사람 아니야~ 이건 순전히 사요의 감정인 걸."
그런가, 그렇다면 나는 대체 언제부터. 사요는 멍하게 리사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숨이 가빠진다. 살면서 기타를 치며 공연할 때 이외에 이렇게 흥분되는 일이 있었던가? 사요는 터질 것 같은 심장으로 리사를 끌어안았다.
그 때, 사요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울렸다. 기본 벨소리가 리사의 황량한 거실을 가득 메웠다. 무시하려고 했는데 소리가 거슬린다. 사요는 리사를 안은 채로 손을 뻗어 휴대폰을 찾았다. 소파 위를 더듬거리던 손이 이윽고 휴대폰을 찾아내어 종료 버튼을 누르려는데,
[언니! 어디야?]
그만 통화버튼을 눌러버리고 말았다. 히나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퍼졌다. 두 사람은 화들짝 놀라며 서로에게서 떨어졌다. 무슨 일인가, 서로를 바라보다가 이내 사요가 먼저 움직여 침착하게 휴대폰을 들었다.
"응, 히나."
[엄마랑 아빠가 외식한다고 언니 찾고 있는데, 어디야?]
사요는 지그시 이마를 짚었다.
"지금 밖이야."
[얼른 와~ 배고파! 맛있는 거 먹으러 간대! 30분 안으로 와!]
흘끔 리사를 바라보았다. 리사는 무슨 일이냐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참, 정신이 없으려니... 그제서야 리사와 뭘 했는지 실감이 난다.
"...그래, 알겠어."
[언니 근데 어디 아파? 약간 헐떡이는 것 같은데?]
사요가 움찔하면서 숨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헐떡였나? 가슴팍을 꾹 눌렀다.
"건강해. 걱정 마."
[목소리도 살짝 떨고 있고... 감긴가?]
"괜찮대도. 이만 끊어. 갈 테니까."
히나가 대답하기 전에 전화를 끊었다. 리사가 어색하게 웃었다.
"아하하, 이제 가는 거야?"
"가야할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응? 뭐가?"
사요가 가방을 천천히 들었다.
"오늘 일은 잊어주세요."
리사의 얼굴을 볼 수가 없다. 사요는 빠른 걸음으로 거실을 빠져나갔다. 현관에서 신발로 갈아신으려고 할 때, 리사가 천천히 사요에게 다가갔다.
"별로 잊고 싶지 않은데..."
사요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아직도 코앞에 닿은 리사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다음에 쿠키 또 만들어 줄게. 음 아니다, 다음에는 빵으로 할까? 올래?"
거절하려나. 리사는 사요의 등을 보며 끈질기게 기다렸다. 잠시 뒤, 사요가 몸을 움직였다. 뒤로 돌아 리사의 몸을 꽉 껴안았다.
"20분 안에 끝내죠. 10분 동안은 어떻게든 집에 갈 수 있을 테니까."
"...사요?"
뜻밖의 대답. 그리고 이내 입 안으로 흘러들어오는 쿠키의 향기. 리사는 웃으면서 사요의 목을 그러안았다. 품 안에서 커다란 고양이 한 마리가 캣닢이라도 문 듯이, 좀 더, 확실하게 사랑해달라고 그르렁대고 있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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