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쿠라코."
"음?"
"요즘 너무 자주 먹는거 아니예요? 초콜릿."
사쿠라코가 초콜릿을 우물거리면서 히마와리를 빤히 쳐다보았다. 수업 시간에도 계속 부스럭대면서 까먹고, 쉬는 시간에도 틈만 나면 까먹는다.
"하지만 맛있는걸."
"뭐든지 너무 많이 먹으면 탈나요."
"아 정말, 그렇게 먹고 싶으면 하나 달라고 하면 되잖아! 돼지 히마와리!"
사쿠라코가 마지못해 초콜릿을 하나 내밀자 히마와리가 그 초콜릿을 받아서 신경질적으로 사쿠라코에게 던졌다.
"누가 돼지예요! 걱정돼서 한마디 해줬더니!"
"귀한 초콜릿을 모욕하는거냐! 잔소리도 모자라서 내 초콜릿을 던져?!"
"모욕하지 않았어요! 아니 그보다 어째서 초콜릿한테 예의를 갖춰야 하는거예요?!"
"먹고 싶으면 '하나만 주세요 사쿠라코 주인님'이라고 해! 하나쯤은 줄 수 있다고!"
"그, 게, 아, 니, 라, 고, 요!"
거지도 아니고 왜 구걸을 해야하는거냐고! 으르렁대던 두 사람은 결국 동시에 홱 돌아섰다.
바보같은 히마와리, 길 가다가 넘어져라!
어른스럽지 못한 사쿠라코, 이나 잔뜩 썩으라죠!
그날 밤.
정적이 도는 조용한 방에서 히마와리는 숙제를 하고 있었다. 펜을 돌려가면서 수학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리며 문자가 도착했다. 보나마나 사쿠라코겠지. 숙제 범위 어디까지냐고 물은 뒤에 알려달라고 쫓아올거야. 낮의 일을 생각하니 괘씸해서 문자를 사뿐히 무시했다.
잠시 뒤에 문자가 또 오더니, 계속해서 문자가 울렸다.
"아, 정말!"
무시하는것도 한계가 있어서 결국 씩씩대며 휴대폰을 들었는데, 그러기가 무섭게 전화가 왔다. 역시나 사쿠라코. 양반은 못되네요. 한숨을 쉬면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
"히마와리!!!"
악, 깜짝이야! 놀라서 휴대폰을 잠깐 귀에서 떼었다. 뭐하자는거지? 잠시 휴대폰을 노려보고 있자, 사쿠라코가 무어라고 계속 웅얼거리는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들렸다. 다시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 댔다.
"귀청 떨어질 뻔 했잖아요. 왜 그래요?"
"히마와리, 큰일났어어어어!!"
"진정하고 말해요. 무슨 일이예요?"
"히마와리이..."
자세히 들어보니 훌쩍이고 있는것 같기도 하다. 낮의 일이 괘씸했던건 어디로 가고 이내 사쿠라코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히마와리의 목소리가 한층 부드러워졌다.
"울어요? 대체 무슨 일이길래..."
"흐아아아, 문 열어줘..."
"카에데도 있으니까 조용히 들어와주세요."
숙제가 아니더라도 결국 들어오게 되어있었군요. 문을 열어주니 사쿠라코가 헤쓱해진 몰골로 비척비척 들어왔다. 역시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있다. 조용히 사쿠라코를 방에 데리고 들어와서 침대 위에 앉혔다.
"자, 이제 말해봐요. 무슨 일이예요?"
"나... 믿기지가 않아서..."
"네?"
대답 대신에 사쿠라코가 입을 크게 벌렸다. 그러자 곧 그 안에 보이는 새까만 자국.
"충치...?"
"치과 싫어, 싫다고!! 흐아아아아!"
"시끄러워요! 초콜릿을 그렇게 먹으니 당연히 이가 썩죠! 자업자득이예요!"
큰 일인줄 알았더니 충치였다니. 안심이 되면서도 징징대는 사쿠라코가 한심해보이는 히마와리였다. 카에데가 있으니 조용히 해달라고 했는데도.
"이게 다 히마와리 때문이잖아! 분명 이 썩으라고 저주를 퍼부었을거야!"
"그건..."
저주를 퍼부었다고 썩을 이가 아니라는건 알고 있었지만 펑펑 우는 사쿠라코 앞에서 히마와리는 할 말이 없어졌다. 저주를 퍼부었다면 퍼붓긴 했으니... 서럽게 우는 모습에 괜히 미안해진다.
"하아... 하는 수 없잖아요. 충치는 치료해야죠. 내일 치과 가요."
"무섭단 말이야... 지금부터라도 양치 열심히 하면..."
"이미 틀렸어요. 양치는 임시 방편이지 치료가 아니예요."
"너무해 히마와리..."
"...정 그렇다면... 같이 가드릴수도 있지만요."
사쿠라코가 히마와리를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괜히 머쓱해진 히마와리는 뒷짐을 지고 눈동자를 굴렸다.
"바보 아냐? 히마와리가 같이 가준다고 안아픈건 아니잖아! 바보! 멍청이!"
...뭐라?! 기껏 걱정해줬더니!
"그럼 뭐 어쩌라는거예요! 이젠 나도 몰라요, 얼른 여기서 나가요!"
"나갈거다! 막말이나 퍼붓고, 저주나 걸고, 못돼 처먹었어!”
"본인 이 걱정이나 하시죠! 드릴로 뚫고 긁어내고 아마 정신을 잃을지도 모르는데 저도 이젠 몰라요!"
기세 좋게 나가려던 사쿠라코가 멈칫했다.
"...드릴로 뚫어? ...긁어내? 기절하는거야 나?"
"안나가고 뭐해요?"
"....내일 수업 끝나고 기다려..."
"뭐라고요?"
"가... 같이 가달라고! 으씨..."
다시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맽힌 채 사쿠라코가 쓸쓸히 퇴장했다. 그 모습을 보니 웃기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치과에 가본적이 한번도 없나보네요. 기절까지는 아닌데.
***
다음날, 히마와리는 수업이 끝나고 여느때처럼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어제 밤의 일을 새까맣게 잊고 가방을 메고 나가려는데, 사쿠라코가 조심스럽게 히마와리의 옷깃을 붙잡았다.
"...사쿠라코?"
"치과... 가자."
어제 결국 제대로 못잤는지 얼굴이 더 퀭해졌다. 아 맞다, 치과.
노을을 쐬며 나란히 하교하는 길. 오늘따라 사쿠라코가 유난히 조용하다. 눈빛에 초점이 없고 다리도 눈에 띄게 후들거린다.
"사쿠라코, 괜찮아요?"
"괜찮아..."
"이는 많이 아파요?"
"드릴... 기절..."
"사쿠라코..."
아무래도 겁을 잔뜩 먹은 모양이다. 어젠 내가 너무 심했나? 사쿠라코는 이럴때면 또 너무 쓸데없이 순진하다.
"어제는 거짓말이었어요. 기절할 정도는 아니예요. 드릴로 뚫는 것도... 아니, 일단 뚫는건 맞지만 드릴은..."
"안심시켜주지 않아도 돼. 고마워."
사쿠라코가 씁쓸하게 웃어보였다. 아, 정말... 이러면 너무 미안하잖아요.
결국 반쯤 정신 나간 사쿠라코를 끌다시피 해서 도착한 치과. 들어서자마자 여기저기서 이를 긁는 소리, 지지직거리는 소리, 신음소리가 들린다. 히마와리가 접수처로 가려고 하자 사쿠라코가 히마와리의 손을 꼭 잡았다. 뒤를 돌아보니 바닥을 멍하게 내려다보며 부들부들 떠는 사쿠라코가 보였다. 히마와리가 싱긋 웃으며 사쿠라코의 손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무서워요?"
대답 대신에 고개만 끄덕이는 사쿠라코. 이름답게 아직 어리네요.
"제가 옆에 있는다고 안아픈건 아니겠지만, 안아프도록 기도해줄게요. 그러니까 기운 내요."
"히마와리..."
"눈 딱 감고 30초만 세면 다 끝나있을거예요. 그때까지 옆에서 손 꼭 잡아줄게요. 치료 끝나면 맛있는거 먹으러 가요."
히마와리의 눈을 한번 보더니, 그제서야 용기가 났는지 사쿠라코가 한걸음 내딛었다. 접수처에서 접수를 하고 기다리는 동안 사쿠라코는 히마와리의 손을 놓지 않았다.
"저기 히마와리, 치과 와본적 있어?"
"어렸을때 몇 번 와본적은 있어요."
"무섭지 않았어?"
"전혀요."
"어른스럽구나, 히마와리는. 쳇."
분하다는 듯이 혀를 차는 사쿠라코를 보며 피식 웃던 히마와리가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보니 어렸을때 저도 치과를 많이 무서워했던것 같은데, 왜 무서웠던 기억이 없을까요?
사쿠라코의 이름이 불려지고, 치료가 시작됐다. 약속대로 히마와리는 사쿠라코 옆에 앉아서 계속 손을 잡고 있었다. 바들바들 떨던 사쿠라코의 손은 히마와리의 체온에 안심이 되었는지 이내 진정이 되었고 별 탈 없이 치료를 마쳤다.
"맛있는거 먹으러 가자!"
한결 시원해진 표정으로 사쿠라코가 기세 좋게 외쳤다. 히마와리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했어요. 하지만 앞으로 너무 단 음식은 당분간 먹지 말아요."
"...그보다 히마와리, 언제까지 손 잡고 있을거야?"
"네?"
히마와리가 급하게 손을 뺐다.
"자, 잡아달라고 할때는 언제고!"
"설마 계속 내 손 잡고 싶었던거야? 그렇게 원한다면 더 잡아도 돼."
"됐거든요!"
히마와리가 씩씩대면서 앞서 걷고, 사쿠라코가 그 뒤를 부지런히 따랐다.
"미안 히마와리, 같이 가~!"
***
"히마쨩, 무서워?"
사쿠라코가 히마와리의 손을 꼭 잡았다. 히마와리는 눈을 꼭 감고 어깨를 움츠렸다.
"내가 옆에 있어줄게. 1부터 30까지만 세면 금방 끝날거야."
"하지만... 치과는 싫어..."
"이렇게 손 잡고 있으면 안아플거야."
"손 놓으면 안돼..."
"절대 놓지 않을게."
히마와리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싱긋 웃었다. 사쿠라코도 씩씩하게 웃어보였다.
절대 놓지 않을게. 그러니까 같이 힘내자.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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