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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유루유리

[꽁트]가지 않는다, 갈수가 없다

왜 불렀어, 퉁명스럽게 묻는데 히마와리는 한동안 대꾸하지 않고 뒷짐을 지고 나를 등지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길게 하는지 해가 꽤 긴 그림자를 그리는 동안 우리는 말이 없었다. 그냥 돌아갈까. 발걸음을 돌리려는데 히마와리의 발 끝이 내 그림자를 살포시 밟았다. 마치 정말 붙잡힌 듯이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냥, 사쿠라코는 이대로 있어줬으면 해서요."

혹시 내가 또 뭘 잘못했나. 머릿속으로 하루동안 있었던 일들이 스쳐지나갔다.

"어디 가지 말고, 딱 이 거리에서."

어느새 히마와리는 내 소매를 붙잡고 있었다. 이제 정말 붙잡혔다.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있어요.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뭘, 왜 이러는지 묻고 싶었다. 슬픈것 같기도 하고 아무렇지도 않아보이기도 한 저 오묘한 표정으로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으며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듯 하더니, 히마와리는 이내 웃었다. 어깨가 살짝 들썩일 정도로.

"왜 그런 바보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거예요? 사쿠라코 답긴 하지만."

여전히 움직일수가 없었다. 그림자를 밟혀서? 소매를 붙잡혀서?
어딘가 단단히 묶인 기분이었다. 의자에 묶여서 재갈을 물고 있는 듯이 답답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도 웃고 있었다.

"이 자리에 있어줄거죠?"

눈물을 훔쳤다. 너무 웃어서 그만 눈물이 고이고 만 모양이었다.

"갈데가 있어야 어딜 가지."

이렇게 붙잡아두고 있는데 말이야.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