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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히마사쿠]꿈 걷기

(1) 당신이 왜 여기에 있나요?

글쓴이:렌마

2016/2/04~2016/02/10


*모든 내용은 픽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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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는 살아나고 누군가는 죽는다. 희비가, 생사가 엇갈리는 것은 어쩌면 누군가가 누군가를 '대신'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반드시 그 영향이 누군가에게 전해진다. 사람이 언행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나비효과는 생각보다 무섭다."

 

  -사쿠라코의 독백

 

 

 

01

 

  "웁...."

 

  눈을 뜨기도 전에 구역질이 몰려왔다. 목구멍으로 차오르는 더러운 기분을 이겨내지 못하고 몸을 뒤집어 바로 게워냈다. 머리는 띵했고 이명이 와서 내가 고통스러워하는 소리조차도 잘 들리지 않았다.
  머리를 쥐고 잠시 웅크려있다가 천천히 눈을 떴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흑백의 세상이었다. 내가 있는 곳은 학교 운동장 한 가운데였다. 가슴에 손을 얹어보니 숨은 제대로 쉬고 있는지 위아래로 크게 올랐다가 가라앉는다.
  나는 교복을 입고 있었다. 어느 학교 교복인지 모르겠다. 어쩌면 바로 눈 앞에 보이는 학교의 교복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등교하다가 기절이라도 한 것일까? 귀를 한대 때렸다. 이명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것인지, 흑백 세상 속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럴때가 아니다. 등교를 하는 도중이었다면 지각일 것이다. 서둘러 걸음을 옮기다가 가방이 없다는걸 깨달았다. 스스로도 기가 찼는지 어깨가 올라가고 헛웃음이 나온다. 일단 학교로 들어가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하고 복도까지 뛰어들어갔다.

 

  "지각이군요."

 

  소리가, 방금 소리가 들렸다. 반가운 마음에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여자애 한명이 서류더미를 껴안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파란 머리가 양갈래로 땋여있다.

 

  "아, 죄송합니다. 얼른 들어갈게요."
  "몇학년 어느 클래스인지나 알고 가겠다는건가요?"

 

  여자애가 날카롭게 눈을 번쩍인다.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몇학년 어느 클래스인지 모르겠다.

 

  "아... 아뇨."
  "이름은?"
  "......."

 

  팔뚝을 쓰다듬었다. 그것도 모르겠다. 내가 누군지, 왜 여기에 있는지... 여자애가 오른쪽 팔을 내 쪽으로 틀었다. 완장이 보였다.

 

  "저는 여기 학생회장입니다. 저를 따라오세요."
  "아니, 저는..."

 

  나를 스쳐 지나가려는 여자애를 급하게 붙잡았다.

 

  "여기 처음 오시는 분들은 다들 당신과 같은 증상을 보입니다. 너무 염려 마세요. 곧 알게 될테니까."

 

  손을 놓으니 다시 저벅저벅 걸어간다. 조금 떨어져서 여자애를 쫓았다. 수업이 시작되고 있는건지 복도에는 학생 한명 없이 고요하다. 교실 안에서도 어느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혹시 쉬는 날인가?
  학생회장이라는 애가 들어간 곳은 학생부실이었다. 그 아이는 쭈뼛거리면서 들어가지 못하는 나를 두고 열심히 서류를 뒤졌다.

 

  "여기 있네요. 당신에 대한 자료."

 

  나는 여전히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학생회장은 나를 멀거니 바라보다가 결국 내 쪽으로 다가와 서류를 내밀었다.

 

  "붙여져있는 사진, 본인 맞으시죠?"

 

  오른쪽 위에 사진이 붙여져있었다. 학생회장 어깨 너머에 있는 거울에 내 얼굴이 비쳤다. 사진과 내 모습은 일치했다.

 

  "오오무로 사쿠라코. 그게 당신 이름입니다."
  "오오무로 사쿠라코...."
  "클래스는..."

 

  학생회장이 거칠게 나에게서 서류를 빼앗아갔다. 그러더니 무언가를 열심히 찾다가, 미간을 찌푸리면서 다시 앞쪽으로 넘어갔다. 뒷장과 앞장을 한동은 번갈아가면서 뒤지던 그녀는 서류를 천천히 덮었다.

 

  "당신..."

 

  그녀의 눈과 내 눈이 마주쳤을 때, 순간적으로 오금이 저리면서 주저앉을 뻔했다. 그녀의 눈에서는 빛이라고는 찾아볼수 없었다. 그녀는 초점이 없는 눈으로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당신이 왜 벌써 여기에 있죠?"

 

  네? 그게 무슨... 무어라고 반박하려고 하는데 학생회장이 갑자기 내 입을 손으로 막았다. 그러면서 다시한번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뭐하자는거지?

 

  "히마와리, 서류 정리는 어떻게 됐어?"

 

  복도 쪽에서 어느 여자의 목소리가 쟁쟁하게 울려왔다. 학생회장은 나를 끌어당기더니 학생부실 안쪽의 창고에 집어넣었다. 나는 찍소리도 못하고 바닥에 엎어졌다.

 

  "소리내지 말고 있어요. 절대... 소리 내지 말고."

 

  그녀가 나에게서 눈길을 거두자 무언가가 반짝하고 바깥으로 스쳐 지나갔다. 창고 문이 닫히고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막 부실로 들어온 참이에요. 곧 해야죠."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해. 처리해야 할 영혼이 많아서 말이야."
  "한두번 해본 일도 아니고, 걱정 마세요."
  "그래. 그런데...."

 

  대화가 끊겼다. 나도 모르게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낯선 냄새가 나는데. 누가 들어왔었나?"
  "아뇨, 줄곧 저 혼자였어요."
  "흠... 그래? 그럼 일 마저 부탁할게."
  "이따가 뵐게요."

 

  여자가 나갔는지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이후로도 한동안 나는 움직이지 않았고 곧 학생회장이 문을 열어주었다.

 

  "....."

 

  우리는 서로 눈을 마주치고 입을 열지 않았다. 학생회장은 나를 오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연민의 눈빛 같기도, 의심의 눈빛 같기도 했다.

 

  "...오오무로 씨."
  "ㄴ...네."
  "잠깐 실례."

 

  학생회장이 가녀린 손가락을 천천히 내쪽으로 뻗었다. 손가락은 내 어깨 앞에서 멈추더니 톡, 살짝 건드렸다.

 

  "역시."

 

  그녀는 다음엔 내 팔을 건드렸다. 날 건드릴 때마다 학생회장의 표정이 더욱 오묘하게 일그러졌다.

 

  "감질나게 건드리지 말고, 할거면 확실하게 해요."

 

  그녀의 팔을 휘어잡고 내 팔 위에 그녀의 손을 얹었다. 그녀는 이번엔 크게 움찔거리더니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서, 나는 뭔가요?"
  "....."
  "이 곳에서 나는 뭐냐구요. 와서는 안될 사람인가요?"

 

  학생회장은 내 손에서 자신의 손을 빼내더니 서류를 다시 보여주었다.

 

  "이름 아래에는 그 사람의 클래스가 적혀있어야 해요. 그런데... 당신은 적혀있지 않아요. 그리고."

 

  그녀가 서류를 덮었다.

 

  "왜 그런 당신과 제가 접촉할수 있는지 의문이군요."
  "저기요, 아까부터 이상한 말씀만 하시는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거든요. 그래서 뭔데요?"

 

  학생회장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입을 열었다.

 

  "여긴... 사후세계예요. 그리고 당신은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당신, 왜 여기에 있는 겁니까?"

 


>(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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