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저는.... 산것도 죽은것도... 아닌....?"
히마와리가 간신히 입을 뻥긋거렸다. 나는 그녀의 팔을 잡아당겨 내 곁으로 이끌었다. 그녀는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나에게 기댔다.
"그런... 그렇다면 지금 히마와리는...?"
그제서야 상황파악이 되고 있었다. 교장은 동정심을 이용해 나를 저승에 묶어두려고 했다. 사실 교장에겐 학생이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는 것이다. 이렇게 산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승에 3년이나 묶어놓고 되돌아갈 곳 없는 미아로 만들다니!
"히마와리한테 무슨 짓을....!"
"저는 관리자가 필요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히마와리를 설득시켰고, 그 설득을 받아들여서 내려진 결과입니다. 히마와리의 동의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내 서류를 챙겨들고 서랍장으로 달려갔다. 이름을 적고 테이프를 붙여서 저승사람이 되는 거라면, 아직 테이프가 붙여지지 않은 내 이름을 지우면 된다. 그리고 히마와리 서류도 찾아내서...
"잊으신게 있는것 같은데. 이 아이를 구하시려는거면... 이미 테이프를 붙인지 3년이 지났답니다."
이젠 그 얼굴이 결코 아름다워보이지 않았다. 히마와리는 여전히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오오무로 씨,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훌륭한 관리자를 해방시켜줄수 없습니다. 테이프는 한번 붙인 이상 뗄 수 없기 때문이죠."
교장은 끝까지 의연한 표정이었다. 분명 히마와리는 처음 왔을때 완전히 죽은 몸이 아니었다. 교장은 그런 히마와리를 꼬드겼고 이름에 테이프를 붙였다.
"...살인자..."
분에 겨워 몸이 떨렸다.
"도대체 그동안 이런 방식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저승에 가둬둔거야...?"
"......"
"히마와리는, 덕분에 이승과 인연이 끊겼어! 환생도 마다했는데..."
히마와리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천천히 다가와서 내 손을 잡았다.
"이제... 됐어요. 저는 원래 있던 대로 여기에서 계속 지내면 돼요. 오오무로 씨는 돌아가세요."
"히마와리!"
"어차피 지금 돌아갈수 있다고 해도 제 육체는 어디엔가 묻혔겠죠. 무덤 속에서 살아날순 없잖아요."
"아니야, 환생이 있잖아요!"
히마와리가 조용히 눈물을 떨구었다. 창고에서 본 빛은 헛것이 아니었다. 아직 빛을 다하지 않은 그녀의 영혼이 빛난다. 가망이 있다.
"그러기엔 이미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어요. 자기계발을 할수 있는 기간은 정해져있거든요."
"....그런...."
"오오무로 씨. 두번째 서랍장에 하얀 잉크가 있을겁니다. 그걸로 이름을 지울 수 있어요."
교장이 끼어들었다. 당장이라도 달려들어서 노란색 머리카락을 뽑아버리고 싶었지만 산 자는 죽은 자와 접촉할 수 없다.
내가 가만히 서있으니 히마와리가 하얀 잉크를 꺼내왔다.
"받으세요."
"으...으...."
히마와리가 억지로 하얀 잉크를 내 손에 쥐여주었다. 그래도 내가 가만히 있자, 이번에는 내 손을 잡고 서류를 펼쳐서 이름을 한글자씩 지워갔다. 하나씩 내 이름이 없어진다. 이승에 가까워진다.
"아니야....그만해...."
인간은 정말 이기적이다. 그렇게 히마와리 대신 소리지르고 난리를 피웠건만 막상 해방이 눈 앞에 오니 마음이 편해지고 있었다.
"안녕히가세요..."
히마와리의 행동은 막힘없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구슬프게 떨어지고 마지막 한글자가 지워지려는 찰나, 나는 내 손을 잡고 있는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
"이승에서 다시 만나요. 꼭."
"...둘! 하...둘!"
"맥박... 정...!!"
"하나...하... 하나! 둘!"
주변 소리가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고요했던 악몽에서 깨어나는 것 처럼 서서히 정신이 돌아오고 몸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흉부가 부서질듯 죄여왔다.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고 싶은데 그 대신 눈가에 물이 차올랐다.
"하나! 둘! 하나! 둘!"
"맥박 정상! 돌아왔습니다!"
돌아왔습니다, 그 한마디에 모두들 한숨을 돌렸다. 간호사 한명이 내 얼굴에 바짝 다가왔다. 이마에 땀이 흥건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오오무로 씨."
나는, 3일만에 기적적으로 눈을 떴다.
꿈만 같았던 한순간이었는데 이승에서는 3일이나 되는 시간이었다. 악몽이었는지 진짜 저승인지 생각해보는건 머리만 아파와서 관두었다. 차라리 악몽이었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누군가가 살아가는 세상, 그런게 저승이라면 평생 죽고 싶지 않다. 홀로 지옥에 떨어지는 편이 훨씬 낫다.
나는 완전히 걸을 수 있을 때까지 재활 훈련을 받으면서 그간의 경과를 들었다. 친구들과 약속 장소가 가는 도중에 사고가 났다. 열차가 옆으로 넘어졌는데, 캐리어가 내 머리 쪽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뇌진탕으로 3일이나 위태로웠단다. 가족들도 3일 밤낮 가리지 않고 누워있는 나를 보살폈고 매일같이 눈물의 기도를 했다고 한다.
"그 열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 상당수가 여기로 실려왔었어요. 그런 장면은 몇년을 일해도 익숙해지지 않더라구요."
재활 훈련을 도와주는 남자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몇명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고... 오오무로 씨는 정말 기적이었어요. 심장이 몇번이나 멈춰서 의료진이 얼마나 뛰어다녔는데요."
"아..."
누군가는 살아나고 누군가는 죽는다. 희비가, 생사가 엇갈리는 것은 어쩌면 누군가가 누군가를 "대신"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반드시 그 영향이 누군가에게 전해진다. 사람이 언행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나비효과는 생각보다 무섭다.
"근데 오오무로 씨가 생사를 헤맨 3일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죠."
"...네?"
그리고 또 하나 무서운 것이 있다.
"3년동안 생사를 헤매고 있는 사람도 있으니까."
바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직감"이라는 녀석이다.
>(5)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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