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학생회장의 눈은 깊고 끝을 알수 없는 우물 같았다. 돌을 던져 넣어서 깊이를 알고 싶을 정도였다. 그 눈은 나를 앞에 앉혀놓고는 내 손 끝만 바라보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 함께 생각해보자고 한지 30분 정도가 지났다. 정확히 말하자면 시계가 없으니 시간을 알수도 없고 사후세계라니 시계가 있더라도 무용지물일 것이다. 나는 신기하게도 학생회장이 말한 모든 것을 차분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여기는 사후세계이고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 한마디로 나는... 불청객이다.
"혹시 여기 오기 직전에 무슨 일을 당했는지 기억 안나세요?"
"전혀... 이름도 기억 못했는데 그걸 알리가 있나요."
그녀의 말에 의하면, 이승에 있는 사람은 저승에 있는 사람을 느끼지 못하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나는 죽지 않았는데 그녀는 날 만질수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지런히 모아져있는 그녀의 손 끝을 살짝 쳤다. 학생회장이 몸을 움츠리면서 손을 책상 밑으로 감추었다.
"확실히 만질수는 있네요."
"...그러게요."
그녀는 다시 책상 위에 손을 올리면서 내 눈을 바라보았다.
"어쨌든 당신은 이 곳 사람들의 눈에 띄지 말아야 해요."
"저승으로 끌고 갈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까 그녀가 해준 말을 되읊으니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곳에 있는 사람들은 악령은 아니지만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들이라 함께 저승으로 가려고 접근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애먼 나는 목숨을 잃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면...
"당신은... 당신도 죽은 사람 아닌가요? 당신은 저를 어떻게 하실 작정이시죠? 저승으로 데려갈건가요?"
"아닙니다. 저는 이 곳에서 오래 일했기 때문에 어느정도 유혹을 떨칠 수 있습니다."
"오래라면 어느정도...?"
"적어도 3년 쯤은 됐을 거예요."
그녀가 살포시 주먹을 쥐었다. 죽은지 3년은 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저는 이곳에서 숨이 다한 이승의 사람들을 저승에 안전히 갈 수 있도록 영혼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학교와 비슷한 시스템으로 자신이 누군지 알려주고 이승과 비슷한 환경을 제공함으로서 영혼이 파괴되는 것을 막죠."
"영혼이 파괴돼요?"
"자괴감이 커지면 자칫하다가 환생도 못하고 스스로 자멸해버릴수 있어요. 그동안 여럿 봐왔고... 정말 끔찍한 일이에요."
완장에서 무게가 느껴졌다. 그녀는 덕분에 환생할 기회조차도 얻지 못하고 그저 안내인의 역할만 3년째였다.
"환생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저는 제가 후루타니 히마와리라는 것 외에는 몰라요. 이승이 그리우면 안되니까 모든 것을 알게 되는걸 거부했죠. 굳이 환생하지 않아도 여기서 모두를 돌보는게 즐거워요."
고개를 조금 주억거리다가 나도 모르게 입을 크게 벌리면서 한숨을 내뱉었다. 하품이었다. 저승에서 하품이라니. 학생회장도 긴장이 풀렸는지 살짝 미소지었다.
"피곤하시죠? 주무실래요? 저승에서는 시간 개념이 없기 때문에 낮과 밤이 없어요."
"학생회장님은 안주무세요?"
"죽은 사람은 자지 않는답니다. 오오무로 씨가 살아있다는 증거죠."
책상 위에 엎드려서 자려고 했는데 학생회장이 나를 잡아 끌었다.
"죄송하지만 창고에서 주무셔야해요. 눈에 띄면 안되니까."
"...알겠어요."
눈을 반쯤 감은 상태로 학생회장에게 기대다시피 하며 창고 안까지 들어갔다. 이승에서의 피로와는 조금 다른 피로였다. 곧 온 몸을 움직일 수 없을것 같이 정신이 순식간에 아득해졌다.
"얼마든지 주무세요. 그리고, 히마와리라고 불러주세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나는 조금 긴 잠에 빠졌다.
주변이 부산스럽고 시끄러운 꿈을 꿨다.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들려오고 울음소리가 끊이질 않는 꿈이었다.
덕분에 푹 잤음에도 온 몸이 뻐근했다. 눈을 떴을때 학생회장은, 아니 히마와리는 일을 처리 중이었다. 창고 문을 조금 열고 그 모습을 잠시 훔쳐보았다. 친구가 학교에서 공부하는 모습 같았다. 낮과 밤이 없다지만 바깥에서는 밝은 빛이 들어와 히마와리를 비추고 있었다. 소리에 좀 더 집중해서 주변에 사람이 없는걸 파악하고 문을 열고 나갔다.
"일어나셨나요?"
"네. 덕분에 잘 잤어요."
그 맞은편에 앉으니 그녀는 잠시 일을 쉴 모양인지 위쪽으로 크게 팔을 뻗어 기지개를 켰다.
"당신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계속 생각해봤어요. 생각해봤는데..."
"...해봤는데?"
"죄송해요. 별다른 뾰족한 수가 없네요. 이런 일은 처음이라. 그리고, 이건... 그냥 마음이 무거워서 말씀드리는건데요."
그녀는 다시 두 손을 깍지꼈다. 입술을 잘근 씹던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차가워요. 아무래도 죽은 사람들이다보니. 그래서 자꾸... 당신에 대한 대책을 세우다가도 그 따뜻함이 그리워서... 저도 모르게 당신이 여기에 계속 있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
"이승에 그리움 따위 없을줄 알았는데 미련이 남았나봐요. 어쩌면 저도 당신을 지킬수 없을지도 몰라요."
따뜻함이 그립다는 그녀는, 자신의 손을 몇번 쓰다듬더니 내 새끼손가락 끝을 살짝 잡았다.
"이승은... 많이 따뜻하겠죠?"
나는 그녀의 손을 꽉 맞잡았다. 나만 살아있다는 것이 왠지 모르게 미안해졌다. 분명 그녀는 내가 오기 전에는 따뜻함을 잊고 일에 몰두할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이 곳에 잘못 흘러들어온 탓에 그녀가 곤란해졌다. 내가 따뜻함을, 쓸데없는 그리움을 몰고 왔다.
"그동안 돌봐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저는 이제 떠나볼게요."
"...네?"
그녀가 내 손을 더욱 꽉 쥐었다.
"여기에 계속 있어봤자 안좋은 영향만 끼칠것 같아서요. 그냥 밖에서 좀 돌아다니다 보면... 제가 왔던 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돌아다니면 위험해요. 잘못하면 악령들한테 붙잡힐수도 있어요."
그녀는 곧 고개를 떨구면서 헛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얘기하는것도, 제가 당신을 지켜주려고 하는건지 여기에 묶어놓으려고 하는건지 잘 모르겠네요. 저도 저를 못믿겠어요."
내 손에서 그녀의 손이 빠져나갔다. 그녀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당신은 여기에 있어야 할 사람이 아니니까... 돌려보내는게 도리겠죠. 제가 안내해드릴게요. 어쩌면 이 학교에 답이 있을지도 몰라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숨은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무섭지 않았다. 나를 돌봐주고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다. 절대,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탁이... 있어요."
"얼마든지요."
그녀가 웃었다.
"만약에 이승에 돌아가신다면, 제 무덤에 꽃 하나만 놓아주시겠어요? 따뜻한 햇빛을 머금은 해바라기로 부탁드릴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렇게 할게요."
따뜻함이란, 숨이 다해도 그토록 그리운 것이었다. 내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그녀는 내 모습이 새겨진 서류를 챙겨들었다.
"혹시라도 들키면 안되니까... 제 숨을 조금 나누어드릴게요. 저승에서의 숨은 좀 달라요. 완벽하게 숨길수는 없겠지만 임시방편은 될거예요."
그녀는 나에게 천천히 다가오더니 내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녀의 키는 나보다 조금 컸다. 내 눈높이에 그녀의 목이 걸렸다. 목울대가 천천히 밑으로 내려갔다가 위로 올라간다.
그녀의 숨은 저승의 것이라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따뜻했다. 그 순간, 내 턱 밑으로 뜨거운 무언가가 흘러내렸다.
그녀가 나로 인해 따뜻함을 그리워하게 되었듯이, 나도 이제 막 따뜻함을 느끼게 된 참이었다.
>(3)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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